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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11. 2020

내 아이는 계속 원격수업 중입니다.

학교안갈래


초등학교 5~6학년까지 등교하기 시작했다. 학교 앞은 점점 유령도시의 면모를 벗어나고 있다. 초등학교는 처음인 1학년들의 얼굴에는 홍조와 함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유치원 졸업식도 부모님 참여 없이 허전하게 끝내고 역병에 의한 타의적 쉼이 길어지느라 격일로 등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모습이다. 2학년으로부터 6학년 아이들은 울상이다. "학교가 뭐 이래요" 라며 이어지는 수업과 친구들과 멀리서 이야기를 해야 하고, 2주 차가 지나가는데 아직 새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는 등 입이 네댓 발 튀어나왔다.


"얘들아, 학교에서 1학년 꼬맹이들 만나면 잘해줘라. 정상이 아닌 지금이 저들에게 처음이라 감지덕지 좋아한단다. 정상으로 빨리 돌아가야겠지?"

불만이 가득한 입술을 내밀면서도 아이들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이유를 물어보니 급식이 킹왕짱, 울트라 초트급 대박 완빵 맛있다는 것이다. 전교생의 반을 먹이면 되니 좋은 재료와 풍성한 식단으로 매일 아이들을 홀리고 있나 보다. "샘, 스테이크도 나오고 갈비는 기본이에요. 작년엔 간식도 하나였는데, 음료수에 쿠키에 간식도 여러 개라 더 좋아요"


나는 그 말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둔 몇 가지의 반찬을 이용해 혼자 차려먹는 작은아이가 생각났다. 친구들도 사귀기도 어렵고, 대화도 많이 못하고, 점심시간까지 오래 수업을 들어야 된다는 여러 이유로 효율성을 내세워 원격을 신청해달라는 아이였다.  영양사가 노련하게 구성한 식단, 조리사 샘들이 최적의 실력으로 조리하고, 업체에서는 가장 신선한 농수산물을 공급할 테니 내가 준비하는 것과는 비교불가일 것 아닌가.


급식만이 문제가 아니다. 고학년 수업은 선생님이 직접 온라인과 진도를 맞춰 설명하시고 질문도 가능하다. 온라인 수업에서 가장 부족한 친구들과의 모둠을 통한 의견교환이 가능하다. 근거리는 아니지만 다양한 발표를 통해 온라인의 부족을 해소할 수도 있다.


'너무 오래 자유롭고 쉬는 게 아닐까?' 혼자 심각해졌다.

퇴근하자마자 아이를 (전문용어로) '꼬시기' 시작했다. 급식의 '급'자를 말하려는 순간 아이는 눈치를 채고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됐어, 엄마 밥이 제일 맛있어."

"오늘은 스테이크도 나오고, 간식이 몇 가지나 된다더라..."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눈으로 말했다. '엄마, 고작 스테이크로 나를 설득하려는 거야?' 내가 유치한 이유를 들었다는 사실에 민망해졌다.


"선생님이 직접 수업도 해주시..."

"괜찮아, 아는 건 빨리 넘어가는 온라인이 편해"

"친구들도 만나야지..."

"수학학원 가면 만나, 그리고 나랑 친한 애들은 홀수 날짜에 등교해서 못 만나고, 아예 모르는 친구는 사귀기도 힘들어, 그리고 학교 앞에 애들 많아"


더 들이댈 수 없었다. 아이는 확고했다. 아이를 설득할 근거를 더 찾지 못했다. 어쩌면 아이의 이유가 더 설득력 있었다. 지난주부터 아이는 등교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빨리 일어나 온라인 학습을 하고, 친구들이 2교시를 시작하기 전 이미 그날 학습과정을 다 마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왔다. 그런데 아이의 원격수업을 향한 의지가 더 강해진 이유가 있다. 용돈으로 간지 나는 보드를 산 것이다. 바퀴에 빛이 반짝이고 오색찬란하며 펄이 들어간 보드. 그것을 연습하려는 목표가 더 생기자 아이는 바빠졌다. 아침 기상이 더 빨라졌다. 오늘 아침은 나보다 빨라 6시에 일어났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빨리 수업을 마치고 나갈 계획이었다. 머리를 감고 나오는데 벌써 학습이 끝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보드를 들고 친구들이 등교하는 길을 비껴 공원으로 갈 그녀의 위대한 계획이 멋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왜 이런 내 아이에게 스테이크로 꼬시려고 했던가. 반성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친구들이 부러워할지도 몰라 5분만 늦게 나가렴."

 엄마보다 당당한 아이야, 네가 슬슬 멋져 보이는구나.


원격수업, 그게 뭐라고. 너는 어디서든 배우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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