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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12. 2020

동네 유일 '핫'한 여자가 되었다.

1등도 못 해본 내가, 유일한 존재라니

카페에 전화로 주문한다. 음료를 만드는 5분 정도의 시간도 서 있기 빠듯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공방 앞에서 기다린다는 전화를 한 두 번 받은 후로는 자리를 비우지 않기 때문이다. 얼른 달려가 냉큼 이미 완성된 컵을 받아 나오곤 했다


여름이 짙어지고 있다. 코로나로 봄을 누리지 못하던 사람들은 폭염의 시작부터 적잖이 당황하고 시원한 음료를 찾기 시작했다. 카페마다 아이스 음료가 불티나 시작할 것이다. '얼죽아'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쓰였다. "왜, 얼어 죽어도 아이스란 말이지?" 어릴 때부터 이가 약하고 시큰했던 나는 얼음을 즐겨본 역사가 없다. 입안에 각얼음 하나를 넣고 다 녹기 전에 뱉곤 했다. 얼음을 머금으면 온 몸이 얼어버릴 것처럼 쭈볏섰고 턱이 작아서인지 각얼음 하나도 머금기 힘겨워 침을 흘릴 지경이었다.  '얼죽아'성향의 지인이 얼음을 머금고 있으면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걸 간신히 참기도 했다. 놀라운 능력자인 '얼죽아'님들이 아드득 빠드득 얼음을 깨물면 '님의 턱과 이는 안녕하십니까?'라고 묻고싶어진다. 내가 절대로 얼죽아의 나라로 건너갈 수 없는 까닭이다.


"라테 사이즈업으로 커피는 1.5샷, 시럽도 1.5 펌핑 부탁해요"

"저, 오늘은 아이스?"

"아뇨, 늘 먹던 대로 '핫'으로요"

나는 늘 뜨거운 것만 찾았다. 오늘도 그랬다. 사장님의 목소리가 '설마'하는 기운이 담겨 설명이 필요함을 느꼈다. 이 뜨거운 볕에 '핫'을 마시는지 단골 카페 사장님은 알아야 할 것만 같았다.


"사장님, 여름에 라테를 핫으로 먹는 사람 적죠?"

"아,,, 거의 없죠. 아, 우리 동네에 한 분 더 계십니다."

"네~? 한분 요?"

"60대 어머니신데, 최근에"


어머니 연배의 취향을 들으니 내가 아이스보다 핫인 게 조금 위축되었다.


"아, 한분이라도 있어 반갑네요."


나의 기뻐하는 목소리에 미안한듯 사장님은 뜸을 들이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분도 얼마 전, 폭염에 갈아타셨어요. 도저히 안 되겠는지 말이죠"

"그럼, 우리 동네에서 한여름에 '뜨거운 라테'주문은 제가 유일한 거네요."

유일한 사람, 60대도 못 견뎌 얼음으로 식힌다는 더위를 나는 왜 뜨거움으로 채울까? 나의 여름 핫한 취향이 유니크하게 도드라졌다."


라테를 테이크 아웃하면서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옛날 사람 소리를 하나 추가했다. 다시 지우고 싶은 말이었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을 막을 겨를이 없었다.

"따뜻한 게 몸에 더 좋은데"

젊디 젊은 꽃띠 남자 사장님은 다행히 고조선 시대에서 온 인물로 나를 쳐다보지 않아 다행이었다.


공방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뜨거운 라테를 홀홀 불어 마시는 기분. 나는 얼어 죽어도, 더워 죽어도 '핫'한 여자로 버틸 것이다. 아이스의 유혹에도 유니크함을 장착해 절대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게 몸에 더 좋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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