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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닥치면 뭐하지?

불행을 딛고 서는

by 최신애


불행이 닥쳤다. 무난한 인생, 특별한 굴곡이 없어 글감을 찾기도 무미건조할 때가 많다. 남편은 최고의 사람이라고 스스로 세뇌하고,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일을 찾아서 하고, 때론 폭풍 잔소리를 내가 하거나 아이들이 할 때가 있다. 남편과 언성을 높여 말하려다가도 지엄하신 아이들에게 타박을 듣는다. "그만해" 아이들을 다스리던 시절은 끝이 났다.


계절은 가을의 끄트머리에 간들거리고 겨울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처럼 여기저기 만발이다. 손이 시리고 사무실에서 무릎을 덮는 담요를 시급하게 찾게 된다. 패딩이 부끄럽더니 이제 패딩을 입지 않은 게 부끄럽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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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나에게 불행이 닥쳤다. 사람들은 불행이 닥치면 그 이유를 찾아 과거를 뒤적거린다. 어제를, 일주일 전을, 한 달 전, 일 년 전을 들춰보며 내가 실수하고 실패하고 불행을 맞닥뜨릴 만한 원인을 찾아 분석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할 여유도 없다. 나에게 달린 많은 사람들의 결정과 향후 방향성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결단을 내리고 손해를 입고도 유턴을 해야 한다.


불행이 닥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단 며칠 만에 일이 틀어져 버린다. 규모가 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휘청거림이 얼마나 강력한 풍파를 일으키고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을지 작은 틀어짐을 통해 유추해본다. 쉬운 일이 없다. 사람이 쉽지 않다. 그에 비하면 돈은 쉬운 것이다. 구하기 어려워서 그러지 손해를 입고 관계가 틀어지지 않으려 했다. 억울하고 법적으로 대보면 한치 양보할 필요가 없을 듯하지만 상대는 상대의 입장에서의 손해만 올곧게 주장한다. 눈물로 호소하고 인간적 면모로 회유하다가 도저히 안 되는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 사람의 모습을 보면 만사 귀찮다. 내게도 이런 사소한 불행은 와볼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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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너무 무난했던가? 다사다난하지 않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사연이 있고 풀어보면 두루마리 휴지 한 세트 다 풀어도 모자랄 정도 아닐까. 자기 입장에 서면 뭐든 다 억울하고 제일 슬프고 세상 무너지는 일이다. 그래서 더 귀찮아지지 않으려고, 더 상하지 않으려고, 더 인간의 바닥을 마주 대하기 싫어서 잡으려던 손을 놓았다. 손해를 감수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속이 시원해졌다. 이번 틀어지는 사건으로 몇 곱절 해결할 일이 생겼지만, 오히려 기회라고 여기게 되었다. 살 궁리를 생각하니 못 살 것도 없고 엎어져 울고만 있을 겨를이 없다.


과거를 곱씹는 게 아니라 미래에 펼쳐질 것을, 아니 몇 달 후 펼쳐질 밝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속이 시원하니 눈이 청명해지고 더 선명해진다. 욕심으로 붙들던 것이었을까? 홀가분한 마음에 감정이 떨어지니 지혜가 스멀스멀 똬리를 틀다가 몸을 쭉 편다. 내게 없던 용기가 용수철처럼 탄성으로 다시 튀어 오른다. 야호. 내게 불행이 닥쳤다. 더 좋은 방향으로 문이 열리겠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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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닥칠 때 글을 쓴다. 폭풍 타자질에 손가락과 손목에 통증이 느껴진다. 이쯤이야. 앞으로 닥칠 시간이 밝게 그려진다. 바로 쓰는 행위 때문이다. 늘 나의 곁에서 나를 위무하고 궁둥이 팡팡하는 '쓰기의 힘'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닥칠 미래를 종일 떠올린다. 용기를 내서 전화기를 돌린다. 하려던 일의 급선회를 알리고 양해를 구한다. 의외로 이해한다는 말과 함께, 적극적으로 반응하겠다며 호응해주니 놀랍다. 이 무슨 낙관적인 현상이란 말인가.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신께 겸허하게 감사 기도를 오래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긍정적인 반응을 해준 지인들에게 더 큰 혜택을 나눠야겠다. 어서 빨리, 내일아 오너라. 내일도 쓰는 내가 있다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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