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머리를 싹둑 잘랐다. 가위가 거울 앞에 있었고 1년을 기른 앞머리가 축축 쳐지는 게 못마땅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잘라버렸다. 내심 이마에 생긴 옅은 주름이 거슬린 이유가 더 컸다.
엄마의 이마 주름을 발견한 건 그녀가 50대 중반쯔음이었다. 나는 결혼을 했고 큰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였다. 젊은 엄마로만 알고 있던 당찬 그녀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몇 개 보이던 날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나의 엄마를 누군가 할머니라 부르는 것이 못마땅하더니 이마 주름을 마주한 날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엄마의 주름은 벌써부터 이마에 존재했고 깊은 주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이마를 볼 정신없이 살아가던 이기적인 존재가 나였음을 그때 발견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앞머리를 반가워했다. 귀엽고 젊어 보인다고 박수를 쳤다. 이마주름을 감추려는 나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말이지 그게 슬프지 않았다. 내 이마의 주름은 내 것이지 누군가의 연민의 눈빛을 받아야 할 고생의 흔적이 아닌 것이다. 세월에 부딪친 스스로의 공로며 기록일 뿐이다. 아이들이 알든 모르든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15년 전 어느 날 엄마의 이마에 새겨진 깊은 주름을 발견하고 내려앉은 내 마음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었다. 그때 엄마에게 미안했었는데, 그때 엄마는 슬프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부모가 낡아가며 세운 것이 나라는 사실이 무겁고 죄송하기만 하더니, 내 새끼들에게 섭섭하지 않은 나를 보고 홀가분해졌다. 엄마는 내가 무겁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자라기만 한다면 기뻤을 것을. 내 아이들의 성장에 내가 기쁘듯. 나는 매일 엄마의 주름을 닮아가고 있음을. 지금도 매일 전화해서 잔소리를 하며 딸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어미의 마음을 주름처럼 닮아가고 있음을. 그 시절 엄마는 슬프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엄마가 쌩쌩할 때 슬프지 않았겠지만, 요즘 팔다리어깨무릎이야~라고 하실 때는 섭섭병이 올라올 수 있어 잘 살피고 있다. 부모님의 말씀 하나하나 받아적듯 주의해서 들어야한다. *팡 로켓배송으로 필요하다시는 것을 보낼 때마다 씻은 듯 나은 목소리를 듣는다. 나의 엄마가 좋아하는 효의 방식을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