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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y 02. 2021

가짜 효녀의 어버이날 선물

콩취야 네 마음은 팥쥐같구나

작년부터 코로나 19 시기와 겹쳐 책 출간에 박차를 가해 왔었다. 사회적 거리와 지인들과의 만남이 어쩔 수 없이 뜸해진 틈을 타 의도하지 않았지만 원고 쓰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 절묘한 타이밍이라 일부러 모든 관계를 끊지 않아도 나의 고립은 정당해졌다. 은둔형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묘한 상황을 1년 이상 즐기는 중이다.




그렇게 1년 3권의 책을 출간하고 1권의 책 원고를 쓰면서 2021년을 넘어왔다. 원고 완성은 순조로웠고 교정도 많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5번째 책을 쓰고 있는 '쓰기 인생 2년 차'. 여전히 코로나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백신 접종을 하지만 그 속도가 빠르지 않다. 올해 설 명절에도 친척들이 다 모이지 않았고 친정어머니의 칠순도 따로 챙겨드렸다. 온라인을 이용한 용돈 전달식은 나에게 익숙한 효도의 방법이 되었다. 미안함이 적당히 묻히는 현실이다.




대부분 가정마다 경제가 휘청한다는 5월이 되었다. 오늘은 5월 1일. 이번 어버이날도 알아서 형제들의 만남을 최소화하고 부모님을 각자 만나야 하나 생각하는 중,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오늘 병원도 들르고 약도 타러 근처 병원에 왔으니, 너희 시댁 산장에 구경 가고 싶은데"

엄마는 미리 알리기라도 한 듯 불쑥 말씀하셨다.

"오늘,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시골에서 요양병원 실버산업에 뽑혀 주방보조를 하고 계셔서 오늘밖에 시간이 안된다고 하셨다. 그런 엄마가 일이 년을 간절히 바라던 일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하고 싶었던 이유는 나 때문이다. 앞에서도 쓰는 인생이라 말했지만, 5권째 책 출간이 임박해 마지막 교정지가 도착했다. 그것도 바로 어제 오후! 교정지를 택배로 받고 얼른 고치고 싶어 졌다. 생각보다 더 괜찮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이었다. 꼼짝없이 일주일을 온통 몰입해야 하는 상황. 나에게는 지금이 부모님보다 더 중요한 '원고 최종 살피기' 상황이다. 이번 책은 학부모들에게 유용한 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공을 많이 들여왔다. 교육 전문서적 처음이라 익숙하게 쓰던 문장을 던져버리고 새롭게 옷을 입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지막 의식을 더 잘 치르고 싶었다. 더 잘 다듬으면 더 잘 읽힐 수 있다. 나의 일분 일초가 책의 완성도와 직결되어 소중하고 소중했다. 부모님보다 더 중요한 시간. 내면의 갈등은 나로선 어쩔수 없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때문에 다가오는 주 어버이날은  온라인 용돈으로 대체하고 다음 주에 시골을 다녀올까 했다.  '엄마, 나 오늘이 주말이고 교정에 몰입하기에 가장 좋은 날인데, 다음 주에 가면 안 될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엄마의 소녀스러운 열띤 어투에 아무런 반대를 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알겠노라고 답해버렸다. 최근 자주 뵙지도 못해 죄송한 마음이 그득했던 남편은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남은 반나절의 시간을 포기하고 모시겠다고 했다. 그 누구라도 반대해 주길 바랐는데.




곧 도착한다던 아버지가 전화를 주셨다.

"우리 지하주차장이 막혀 꼼짝 못 하겠네. 약을 사고 엔진오일도 교환하면 생각보다 많이 늦겠어. 오늘 가지 말자"

 나는 속으로 환호를 했다. '올~, 아버지는 내 편!!!! 나의 소울 빠덜~'이라고 말할 뻔했다. 아빠는 오늘의 급조된 스케줄의 주범이 엄마라는 사실에 짐짓 별로였나 보다. 아버지의 취소 발언은 엄마와 동의한 내용인 줄 알았다. 얼른 남편에게 희소식을 전했다.

"안 가시기로 했어"

흔쾌히 가자던 남편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졌다. '뭐야. 그럼 그렇지. 나만 반대하고 싶은 게 아니었군' 엄마 외에 나머지 3인은 모두 속으로 떨떠름한 상태였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고, 너희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겄다. 가기로 해놓고 이렇게 굼뜨니, 내가 약국 들어간 새, 너더러 가지 말자고 말했단 말이지? 이 영감이~" 

엄마는 애교스러운 성격인데 오늘따라 아주 과격했다. 새로운 산을 올라 산나물을 캐고야 말겠다는 포부가 남달랐다.

"알았어. 난 두 분이 의한 줄 알았지. 빨리 와서 같이 가요. 우리가 길을 안내하면 되니까"

남편에게 얼른 전화를 해서 다시 노선을 정리했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아이고, 딸내미, 나는 오늘 너무 추워서 얼어 죽겠는데 너희 어마이가 저래 고집을 부린다. 난 안 갈란다"

아버지가 구조요청을 하시는데 보조석에서 엄마의 높아진 언성이 들렸다.

"에헤이, 무슨 말인고. 지금 해가 쨍쨍하구먼, 날이 개고 있어서 오늘이 딱인 기라. 속도 좀 내요. 해 떨어질라."

창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온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이었다.



두 분은 우리와 만나기도 전에 거친 우왕좌왕 산을 오르내리신 듯했다. 어릴 때는 불안한 논쟁이었겠지만 지금 두 분의 사소한 다툼은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만나서 근처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우리는 의전차량처럼 아버지 차에 앞섰다. 아버지는 뚱하고 엄마는 설렘 폭발이었다.

"딸내미, 나는 지금 밥이 안 넘어간다 우얀일이고"




천신만고 끝에 우리는 골 깊은 남편의 고향에 도착했다. 잠깐 산장만 구경하고 가겠노라 합의했다고 한 엄마는 차에서 각종 화려한 산나물 채취 용품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이래 좋은데 왔는데, 저짝 위로 5분만 올라갔다 올 거니까 산장에 가마이 앉아 계시소" 

엄마의 등산 실력을 모르는 나는 고운 옷과 운동화 그대로 장화에 산나물 채취용 앞치마(우리를 만나기 전 큰 시장에서 7000원에 구매하셨다는 썰을 이미 수차례 들은 상황이다)를 장착한 엄마의 뒤를 따랐다. 엄마를 보호한다고 따랐더니 엄마는 산타기 달인이었다. 남편은 춥다며 혼자라도 산 아래로 내려갈듯한 장인어른을 호위하며 불을 때고 커피를 태워드렸다.




"어서 내려오라니깐, 해 떨어진다"

아버지의 굵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산장과 점점 멀어졌다. 남편은 안전을 걱정하느라 동동거리고 아버지는 빨리 내려 가자시며 동동거리셨다. 엄마는 자연이 산다에 나올 실력으로 용감무쌍했다. 엄마의 얼굴이 소녀처럼 밝았다. 지천에 갈린 푸릇한 풀을 가려 식용 나물을 발견할 때마가 기뻐하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엄마가 산나물 캐러 산장에 가자고 할 때 한 번도 모시지 못했구나' 먹먹하면서 죄송해졌다. 가장 빠듯한 날, 1분 1초 원고 한 장 한 장 검수해야 할 나의 금쪽같다던 시간이 갑자기 쪼그라들었다. '그까짓 교정, 오늘만 날인가?' 엄마를 눈에 담는 지금이 더 귀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엄마를 눈에 담는 지금이 더 귀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요한 산 중턱, 즐겁게 재잘거리는 늙은 엄마와  늦은 밤까지 엄마를 기다리다 까무룩 잠들곤 했던 중년의 딸이 함께 나물을 캐고 있는 그림. 이상하게도 산수화 그림 한폭같았다.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지.' '사랑해' 우리가 어릴 때, 그렇게나 듣고 싶던 말을 요즘 엄마는 자주 보내시곤 했다."이제 엄마가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구나. 그리고 그 시간은 줄고 있구나. 영원히 내 곁에 계실 수 없구나. 지금이 가장 소중하구나." 아직 기울지 않은 오후, 교교한 산세의 일렁임과 찌를 듯 높고 맑은 새소리가 먼 데서 날아왔다.


적요한 산 중턱,
즐겁게 재잘거리는 늙은 엄마와  
늦은 밤까지 엄마를 기다리다 까무룩 잠들곤 했던
중년의 딸이 함께 나물을 캐고 있는 그림.
이상하게도 산수화 한폭같았다.




'그래, 며칠 밤 좀 더 새면 되지! 오늘의 엄마의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잖아'


"아버지, 잠시만요. 쫌 쫌 쫌 기다려 보이소.  5분만 더요"

산 아래를 향해 엄마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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