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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l 06. 2021

거실에 이불을 깔고서

소통과 화해는 사소한 것에서

비가 오는 소리에 흥분해 침대 위 토퍼를 들고 거실로 옮겼다. 이불을 겹겹이 깔고 접힌 부분까지 사랑스러운 기분이었다. 이불을 펴 든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다. 뾰족해진 작은 아이의 기분을 살피지 않고 두런두런 옛날이야기로부터 지금의 이야기까지 했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자 아이는 "엄마, 오랜만에 속 깊은 이야기를 하니까 새벽인데도 내일 학교 가는 게 걱정이 안 돼" 그렇다. 피곤함은 신체의 상태이기도 하지만 감정이 몸을 더 강하게 주도하는 문제와 관련 있다. 엄마에게 잔뜩 화가 난 아이가 일찍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입이 퉁퉁 부어 학교에 갔고 학교에서도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 졸지 않는 아이가 급식을 한 후 내리 두 시간을 졸았다고 한다. "다 엄마 때문이야"라는 아이의 말은 핑계이거나 엄마에게 던지는 복수의 칼날이 아니었다.

우리 뇌에는 편도체라는 영역이 있는데 상대의 분노와 화 앞에서 여지없이 센서가 발동해 열이 난다. 활성화되어 맞닥뜨린 화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보호를 위한 작동을 한다. 그럴 때면 , 뇌는 활성화되는 '~척'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이가 엄마의 화에 반응하고 자신도 더 화를 냈던 시간은 오롯이 아이의 하루에 남아 편도체에 계속 빨간 신호등을 켰던 것이다. 아무리 친구가 웃긴 말을 해도, 선생님이 배꼽을 잡는 영상을 잠시 틀어줘도, 급식에 닭강정이나 구슬아이스크림이 나와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다. 그런 감정을 끌어안고 며칠 끙끙거렸을 아이에게 미안했다.


엄마라고 넓은 마음이 상시 준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분과 억울함을 진심으로 가라앉힐만한 공감을 하지 못한다. 아니할 수가 없다. 이번에 밀리면 다음에 아이가 더 규정을 어길 것만 같은 염려와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도 사실 품이 너르지 못한 좁쌀 엄마품이기 때문에 겨우 끌고 온 해석일 뿐이다. 나는 아이처럼 똑같이 화를 가라앉히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솔직한 표현이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두 개의 앙상한 가지가 부딪히며 내는 불꽃이 산을 태우는 양상이 자주 발생한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견과 아이의 부주의나 약속을 어김, 엄마의 과민함이나 걱정이 만나 충돌하는 사이즈가 상상 이상일 때가 많다. 그것 때문에 씩씩거리고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출발해 2차전 3차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너르게 편 이불 위에 아이와 함께 굴렀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뾰족한 서로를 꺼내어 찔렀던 부위를 만져주기 시작했다. 대화는 오해와 불신과 상처를 발견하고 보듬는 중요한 매개다. 엄마의 과거를 꺼내고 아이의 과거를 꺼낸다. 아이의 기억에는 내가 있고 나의 기억에는 아이의 외할머니가 있다. 우리는 이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서로 엮여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자기의 작은 그릇으로 엄마를 이해하려 하고 나는 아직도 덜 자란 아이의 모습을 부끄럽지 않게 드러냈다. 엄마의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용되듯 아이도 서서히 나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수용하는 그릇으로 빚어지겠지.


엄마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긴 사과의 진심이 아이의 가슴에 닿았다. 새벽에 잠들었지만 둘 다 아침이 가분했다. 어제 준비한 닭 육수에 국수를 거나하게 말아먹고 등교하시는 아이의 뒷모습이 당차고 씩씩하다.


이불과 말과 기억은 서로를 묶어주고 이어주고 녹게만드는 좋은 재료임을 다시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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