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매드푸딩
장마철이다.
비가오는 날 나는 카페같은 곳에 앉아 밖의 사람들을 바라볼 때가 있다.
우산을 쓰지 않고 걷듯 뛰듯 지나가는 사람,
우산이 뒤집혀서 팔을 허우적 대며 우산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사람,
우산이 너무 작아 어깨 한쪽이 흠뻑 젖은 사람,
한눈을 팔다가 물웅덩이를 밟아 신발과 얼굴이 울상이 되는 사람…….
비와 추위를 피해 뽀송뽀송 마른 곳에서 밖을 바라보며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위안이 된다.
나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기쁨을 느낀다.
비가 올 때 특정 음식들이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본능적으로 위안을 찾아보고자 하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비오는 날이면 사람들은 공식처럼 부침개와 막걸리 같은 음식을 언급한다.
축축한 여름 장마의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부침개와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난 주로 국물 음식이 더 땡긴다.
쌀쌀한 가을비가 내릴땐 더더욱 뜨끈한 음식이 땡긴다.
김치찌개를 먹으면 참 좋겠지만 내가 끓이는 김치찌개는 정말 맛이 없다.
대신 빗소리를 들으며 라면에 고추와 파를 듬뿍 넣고 보글보글 매콤하게 끓여먹는다.
별것 아닌 한끼이지만 더할 나위 없는 위안과 편안함을 느낀다.
살다보면 이런 위안을 필요로 할 때가 종종 있다.
날씨 때문에,
건강 때문에,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나 때문에…….
그럴때 한국인은 소주 한 잔, 국밥 한그릇, 부침개 한 장 같은 친숙한 음식으로 마음의 식사를 한다.
흔히 ‘소울푸드’라고 부르는 음식들이다.
이런 주관적인 음식은 개개인의 경험과 감성 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주로 김치찌개, 된장찌개, 삼계탕, 삼겹살, 부침개, 떡볶이, 라면, 치킨, 닭발 등이 꼽혔다고 한다.
자라며, 살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먹어온 친숙하고 정겹고 안전한 기억 속에 각인된, 마음의 처방같은 음식들이다.
라면을 먹으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다가 ‘그래도 역시 김치찌개가 먹고싶다.’ 생각하며 문득 다른 문화권에선 어떤 종류의 음식으로 위안을 찾는지 궁금했다.
위안을 주는 음식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대부분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집밥과 궤를 같이 한다.
객관적으로는 격식 없고 조잡할 수 있을지 몰라도 흔한 재료로 뚝딱 만드는 든든하고 따듯한 음식들이다.
기분이 좋아지고자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탄수화물의 비중과 열량이 높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음식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면 역시 나답게 쓸데없이 생각이 깊어진다.
들어보거나 접해보았던 음식들도 있지만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생소한 음식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생소한 이 음식들이 저 곳 어딘가에서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음식이란 생각을 하니 어느 곳에서든 잘 먹고 잘 적응하며 문화를 가꾸어 온 온 인류가 참 멋있고 대견하다.
그 대견한 음식들 중 내 멋대로 몇가지를 골라보았다.
Chicken Noodle Soup
치킨누들수프는 ‘영혼을 위한 수프’라는 별명이 있을만큼 위안 그 자체다.
미국에선 감기에 걸리면 먹곤 한다.
당근, 양파, 샐러리 같은 채소를 볶아 닭육수에 넣고 잘게 찢은 닭고기, 원하는 향신료, 짧은 파스타를 넣고 끓여 만든다.
Macaroni and Cheese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한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맥앤치즈다.
우유, 버터, 치즈와 삶은 마카로니를 함께 졸여 취향에 맞게 잘게 자른 베이컨과 할라피뇨 등을 비벼 먹는다.
몸에도 마음에도 엄청난 열량을 주는 음식이다.
Beef Stew
영화 ‘헤이트풀8’을 보았을 때, 눈폭풍 속 산장에서 온몸을 코트로 감싼 사람들이 김이 나는 스튜 속 당근이며 고기 덩어리를 투박한 나무 숟가락으로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 해 겨울 캠핑을 가서 오래 끓여낸 소고기 스튜를 먹고는 춥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렸다.
스튜는 지역에 따라 고기의 종류와 구할 수 있는 재료 등에 따라 만드는 법이 상당히 다양하다.
나는 소고기와 당근, 양파, 샐러리, 마늘을 기름에 둘둘 볶아 감자를 썰어 넣고 토마토 소스, 와인, 육수를 붓고 간을 맞춘 뒤, ‘너무 오래 끓이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끓였다.
가스버너의 가스를 두 번 교체하였다.
너무 오래 끓여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다가 입천장을 데였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오차즈케
일본의 전통음식인 오차즈케는 밥을 물이나 녹차와 다시국물에 말아서 고명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집에서 만드는 간단하고 소박한 한끼 식사로 제격인 음식이다.
일본에 차가 보급되며 여러가지 형태로 발전해 왔다고 하니 만드는 법 또한 집집마다 다양한, 영락없는 집밥의 모습이다.
식사뿐 아니라 후식으로도 종종 먹는데, 때문에 오차즈케를 내오면 손님이 갈 시간이 되었다는 은근한 강요로도 쓰인다고 한다.
Taiwan: Lu Rou Fan (Braised Pork Rice)
대만의 국민음식 중 하나인 루러우판이다.
돼지고기, 달걀, 마늘 등만 있으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정말 포근하고 간소한 집밥이다.
돼지고기를 간장과 오향 베이스로 조리하여 흰 쌀밥 위에 올린 덮밥이다.
언젠가 비오는 타이페이의 길거리에서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다.
US: Grilled Cheese
미국에서 어릴때부터 간식으로 자주 먹는 그릴드 치즈는 빵, 버터, 치즈를 샌드위치처럼 구워내는 간단한 음식이다.
재료가 간단하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맛을 크게 좌우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던 이 음식의 맛의 대부분은 치즈처럼 녹아 붙은 추억과 위안일 것이다.
Fish and Chips
영국요리 중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졌을 피쉬 앤 칩스다.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에서 각종 생선을 튀겨 감자튀김과 함께 즐겨 먹는 요리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간편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음식이다.
튀기고 튀기고 튀긴다.
튀김은 웬만하면 맛있고 조리법이 많이 다양하진 않겠지만, 간단한 음식일 수록 섬세한 맛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 끊임 없는 고민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외에도 이런 저런 문화권에서 참 많은 음식들이 있다.
주방한켠에서 소박하고 정겹게 준비될만한 음식들이다.
글을 적다보니 문득 이 모든 음식들은 사실 하나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이 서로서로 참 닮았다.
문화가 다르고, 재료가 다르고, 고민이 달라도 우리는 모두 위안을 먹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