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지동

지동 어디 즈음/ 웃는권작가

조금은 스산해진 요즘이다.

계절이 그러한 만큼 하늘도 높아졌다.

수원의 작업실에 발길이 닿는 것이 뜸해진 만큼 글을 쓰는 시간도 함께 뜸해졌다.

나는 가을 타는 여인이기에 이 가을 하늘과 공기를 너무 만끽하고 있는데 마음이 자꾸만 슬프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책에서 보니 나에게 집중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울감이 올 땐 나에게 집중하라는 몸의 신호라고 했다.

나는 나에게 충실하고자 아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은 그러지 못했다.

아주 바쁘고 정신없게 보내더라도 나를 위한 시간은 내어 줄 수 있고 이른 새벽, 사무실 점심시간,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에서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시간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일도 멈춘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나를 들여다보지도 일에 집중하지도 못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게으름이 날 지배하고 있다는 걸 나 자신만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말이 살을 찌우는 계절이라고 했지만 어느 티브이 프로에서 정작 말이 살이 찌는 건 본 적이 없다던 그 우스갯소리가 내 귀에 아주 아프게 내리 꽂혔다. 살을 찌운다는 건 좋은 의미도 있지만 정말 게으르다는 의미로도 나에겐 투영되었다. 나 스스로가 날 계속 그렇게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내가 하고자 하는 것, 하려고 했던 것, 계획하거나 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내가 진정 하려고 했던 것이 맞는지조차도 잘 모르겠는 요즘이다. 그러한 요즘 계절이 가을이라 이 계절이 더 슬프게 다가온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런 슬픔 속에서도 가을 지동은 역시나 좋았다.

이른 봄 새싹이 나무를 간지럽히던 계절 이곳에 들어와 힐링하던 시간이 흘러 어느덧 그 새싹들이 빨갛게 무르익어가는 계절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무언가 내가 지금껏 맞았던 계절과 그 감정이 많이 다르다. 왜냐하면 나의 40대 마지막 가을이기도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지 10년째가 되는 가을이기도 하다. 또 2년간 잘 지냈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이곳 지동시장 작업실로 옮겨와 도시가 아닌 옛 화성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가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좀 말랑해지고 울렁대고 싶고 낭만적이고 싶어 지게 만드는 그런 가을이 바로 지동의 가을이다.

지동 화성 근처를 산책하다 무심히 들어간 카페에서도 의자만 가져다 놓으면 멋진 화성 뷰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낡은 벽 옆에 놓인 화분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풍경을 갖는다.

20221007_145808.jpg 허름한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화성 풍경이 여유롭다.
허름한 카페 옛 건물 타일과 조화를 이루는 화려한 꽃화분

지동의 성곽 따라 자리 잡고 있는 주택가 앞은 화분들도 계절마다 그 색이 달라지는데 이 가을에 나팔꽃을 만났다. 어릴 적에 아파트에 살면서 베란다 화분에 심던 분꽃, 강낭콩, 목화, 채송화 그리고 가장 많이 심었던 나팔꽃, 그 나팔꽃이 파란 대문집 앞에 활짝 피어 있다. 파란 대문 집 앞에 분홍색 나팔꽃이 참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집주인 또한 그런 세련된 멋을 아는 분이리라 혼자 상상해 본다.

공사장 어귀에도 타고 오른 나팔꽃이 파란 대문 집 부럽지 않게 하늘 향해 예쁘게 피었다.



해질 무렵의 화성도 작업실 근처 갈대밭도 모두 가을의 색을 담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던 가을도,

뭉게뭉게 하얀 구름이 넘실대던 하늘도,

성난 먹구름이 밀려오던 하늘도,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던 저녁노을 하늘도

지동의 화성에서 맞는 가을은 모두 다

편안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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