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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후 Nov 18. 2020

나는 진짜 행복하기를 원한적이 있는가?

공지영 - 그럼에도 불구하고 #2  지금, 여기, 그리고 나 자신.


38년이나 앓고 병든 남자에게 예수는 묻는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38년이나 앓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건강해지고 싶으냐?" 묻는 예수는 제정신인가?, 38년이 아니라 38일 동안 직업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정말 취업하고 싶어요?" 하고 묻는 거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병든 남자는 이렇게 엉뚱하게 대답한다. "물이 출렁거릴 때 저를 물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 다른 이들이 먼저 물에 들어갑니다."






이 이후에 예수가 그를 고쳤는지 아닌지는 말하지 않고 중요한 건 예수의 질문과 그 사람의 엉뚱한 대답이었다. 그 무렵 예수가 정말 내게 와서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해도 무어라 대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예수는 내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행복해지고 싶으냐?"






 그럼 나는 대답한다. "저도 노력했어요.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런데 저 사람이, 그놈들이, 그 여자들이 그 물에 들어가 휘저어버린 바람에 저는 이렇게 빚더미에 앉고, 저는 이혼녀의 딱지를 달고, 힘들게 애들을 키우고 돈을 벌고... 근데도 저는 희생자이고.. 저도 할 만큼 했다고요. 억울해요. 돈도 없고 재능도 바닥이에요. 전 어쩌죠?"





그때 누군가 나직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솔직해지자. 네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그냥 남을 탓하고 마치 인생 전체를 바친 희생자의 좌석에 앉아 누군가 네게 구호품 같은 행운 꾸러미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의 속물적 현현인 로또 같은 것도 있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장의 한 대화 부분 -





 

그때 작가는 알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 세상에 태어나 나는 한 번도 진짜 행복하기를 원한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왜 행복이 아침에 해가 떠서 내 창문 안으로 그 빛을 비추듯 오지 않았느냐고 불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 수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수백 권의 책을 통해 모든 훌륭한 분들의 행복해지는 비결이 아주 단순한 몇 가지 단어들로 수렵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것은





지금, 바로 여기, 그리고 나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지금" 도 사라지고 "여기"가 사라진 후 우리가 죽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명제라고 수많은 훌륭한 분들이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 순간 작가는 거울을 봤다. 눈 밑에 덮인 새까만 기미와 날카롭게 올라간 눈꼬리, 자글한 주름이 덮인 피부와 처진 턱선 그리고 내 지친 입매를 바라보았다.





 그 거울 속의 여자가 절세미인이라면 내 인생은, 아니 나를 사랑하는 것은 조금 더 순조로웠을까? 최소한 내가 더 쉽게 그녀를 사랑했을까?라고 말한다. 자신의 모습이 끔찍이도 싫었지만 점차 늙고 병들어 가는 스스로의 모습은 더 비참했다.





그래도 작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억지로라도 말이다.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소중한 너!"




모든 것에 연습이 필요하지만 "자기 자신 사랑하기!"가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매일 빠지지 않고 꾸준히 연습이 필요한 일이야,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가 스스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저는 아무것도 아닌 못생긴 구더기예요. 벌레를 겨우 면한 정도라고나 할까요? 저를 함부로 만지시거나 저에게 슬쩍슬쩍 성적 표현이 들어간 농담을 아무렇게나 하시고, 저의 외모를 살짝 비하하는 수고로움을 주시어 피곤한 모두에게 웃음을 주시고..... (생략) 왜냐하면 저는 제가 봐도 다리도 짧고 얼굴도 크고 코는 낮고 눈은 작으니까요. 제가 생각해도 후진 사람이에요 저는.'



= 이것이 자본주의가 원하는 인간상이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이 세계사에 혼자 반기를 드는 일이라고.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혁명가'라고 칭하면서 이 연습을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나는 건강하고 행복하고 나아지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나 더 넣어 연습한다고 한다. 이 연습들이 미치도록 닭살 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그리고 나. 행복은 그리 멀리 있는 게 절대 아니지만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욕망하며 현재를 버린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혁명'이라고 칭하는 작가의 말이 참 와 닿았다. 왜냐면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부분의 사회는 그런 사람을 선호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 충성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자기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을 환영한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행복해지기를 원했는가?"라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감추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찾아서 하고 나 자신을 일부러 못난 존재로 만드는 등,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로 행복을 원하지 않았다. 행복해 보이는 것을 원했을 뿐.





 나는 이제 정말로 행복해 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변화를 스스로에게 주고 있다.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매일 "사랑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행복은 적금이 아니다. 내일 죽어도 오늘 진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면 그걸로 됐다.  '사랑한다'라는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 작은 노력이 자기 자신의 삶을 확실히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은 '매일 똑같은 일을 행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 이라고 했다.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고 행복해 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변화할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지금, 여기 그리고 나.. 나의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서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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