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3 , 그 '남들'이 도대체 누구야?
‘눈을 뜨고 있다고 다 보는 게 아니다. 나라고 나를 다 아는 것도 아니다. 부모라고 해도 친하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에게 평생을 탐험해야할 미지의 세계와 같다,’
며칠 전 친구의 문자가 생각났다.
“ 미친년처럼 며칠을 울며 보내다가 오늘 문득 눈을 드니 꽃이 다 져버렸어.. 기가 막힌다. 인생도 이렇게 보내버릴까 봐 겁이 더럭 났어,”
날마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듯이 마음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버릴 것과 갈무리할 것을 정하자. 매일 하면 그리 힘들지도 않으니까. 예전의 글귀가 생각났다.
‘사물들에 집착하지 않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사물들을 올바르게 바라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물들을 놓아줄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기 시작한다.’
사물을 나로바꿔 생각하면 내가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던 수 많은 순간들, 속았다고 생각한 수많은 시간들, 그때 나를 속인 것은 과연 누구 였을까?
섬진강 내 작업실에 놀러온 후배는 홀로 소맥을 마시며 말한다.
“열심히 살았어 언니, 정말로.. 남들이 다 부모밑에서 공부할 때 내가 동생 도시락 싸고 저녁 반찬 만들면서 난 그러면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좋은 게 올 줄 알았어. 그런데 허무해. 모든 것이 헛바퀴처럼 돌아. 나도 가끔 생각해. 남들처럼 살고 싶다고”
작가는 다시 묻는다. “그 남들이 누군데?, 그 남들 말이야 잘생각해봐. 우리에게 영원한 상처를 주는 그 남들, 남들이 뭐냐니까? 남들이 보면, 할 때 그 남들.”
불행하다 못해, 내 옆에 있었으면 따귀라도 몇 대 갈겨주고 싶은 친구 남편이 있다. 친구는 30년 전부터 이혼을 결심했다. 그 남자는 구타, 외도, 무책임까지 모자라 외국에 산다는 이점으로 마약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이 이혼을 권했지만 친구는 그러지 못했고 15년 전부터 남자가 집을 나가서 이 친구에게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고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날 친구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나는 괜찮은데 남들이 어떻게 볼까 싶어서 그래. 우리 애들이 결혼할 때 남들의 시선도 무섭고 세상은 생각보다 힘들어.”
작가는 말했다. “얼굴도 모르고 만날지도 모르는 그 사람들 때문에 네가 이러고 있는 거라고?”하며 깨닫지 못하는 친구를 동정한다.
이 글을 읽는데 마음 한 구석이 미치도록 아팠다. 마치 상처에 더 큰 상해를 가한 것처럼.
내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며 생각했다. 나는 과연 누구의 시선으로 살고 있었던 걸까? 대부분 우리가 말하는 ‘남들’이라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한번은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남들만큼 해야지”, “남들도 하는데 왜 우리는?”, “남들만큼 잘 살아야 우리도 어디서 안쳐지지”
이 ‘남들’이 도대체 누구이며 누가 정해 놓은 기준이란 말인가?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진정 한번이라도 나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 봐준적이 있는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내 마음이 시키는 것 등을 제대로 바라봐준 적이 있는가?, 이런 것들을 외면 한 채 그 ‘남들’의 시선에 나를 숨겼던 것은 아닐까?
적당한 타인의 시선은 동기부여와 스스로의 반성을 가져다 주지만 우리는 그 적당의 기준을 아직 못찾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그 ‘남들’에 이끌려 우리의 소중한 삶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진정 중요한 것은 오직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가 진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