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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후 Dec 16. 2020

다산이 유배를 가면서 까지 잃지 않았던 정신.

<심경>으로 마음을, <소학>으로 몸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공부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집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수신(修身)의 힘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고난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이라면, 몸을 지키는 공부는 고난 속에서 큰일을 이룰 수 있게 한다. 



그 결실이 바로 <여유당전서>이다.




다산 정약용은 마흔이 될 때까지 누구나 부러워할 인생을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문재로 천재 소리를 들었고, 성균관에 들어가서도 뛰어난 재주로 정조의 눈에 들었으며 이후 과거에 급제하면서 일찌감치 관직의 길로 나섰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그는 마흔이 못 된 나이에 형조참의의 자리에 오르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다산은 이처럼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를 가리켜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나'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해 드나듦에 일정한 법칙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도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화가 겁을 주어도 떠나가며, 새까만 눈썹에 흰 이를 가진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보아도 떠나간다.




 그런데 한 번 가면 돌아올 줄 몰라 붙들어 만류할 수 없다. 세상에서 '나'보다 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잠가서 지키지 않는가.



큰형 정약현이 당호를 수오재로 짓자 느낀 바를 쓴 <수오재기>에 실린 글이다. '수오'는 '나를 지킨다'는 뜻으로 다산의 형제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지켰던 큰형의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누명을 쓰고 머나먼 땅으로 귀양을 떠났을 때뿐 아니라 과거를 준비하고 성공을 구가했던 20여 년까지도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다산은 '나'를 찾았다. 의외로 머나먼 바닷가 귀양지에서 말이다. 그의 삶에서 가장 큰 고난과 비극의 시간이었지만 다산은 그곳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았다.





 삶을 포기할 수 있었던 극단적인 고난의 시간에서 다산이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가 학문에 있고, 오직 집필을 통해서만이 삶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바로 고난을 기회로 삼은 것이다. 그 힘이 된 것은 근본을 바로 세우는 <수신>이었다, 고난을 통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소학>을 통해 몸을 바로 세우고 자신이 해야 할 일, 이루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면 스스로 무너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악의 고난에서 다산은 그 의미를 성찰하며 자신을 바로 세웠다. 끝을 모르는 고통의 시간에서 포기와 절망이 아닌, 희망과 소명을 붙잡은 것이다.





 성공에 미혹되고 취해서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린다. 정약용은 인생의 가장 빛났던 순간에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그리고 책을 펼치고 독서를 하며 내 마음을 잡았다."





다산은 머나먼 귀양지에서 <소학>을 자신의 마지막 공부로 삼았고, 진정한 정체성과 자신을 되찾았다.




다산은 지극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뒤늦게 찾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대부분 평생 자신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지낸다.




다산은 유배를 가면서까지 아들에게 남겼던 마지막 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부를 쉬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폐족(무거운 죄를 지어 출셋길이 막힌 집안)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해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밖에 없다. 독서는 사람에게 가장 깨끗하고 중요한 일일뿐더러, 호사스러운 집안 자제는 그 기쁨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공부의 마지막은 일과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명심하라. 이것이 없으면 글을 읽고 쓴다 하였다 하더라도 공부가 아니다. 헛똑똑이가 될 뿐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평생 감옥에 갇혀 살면서 까지 나의 목숨과 집안의 안위, 재물, 재산 등을 걱정하지 않고 자식들의 올바른 삶을 위해 독서와 공부 그리고 그 배움을 일상에 적용시키고 실천하여 삶을 살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다산의 그 지독한 정신이 온전히 나에게 전해진다. 그 지옥 같았던 유배지에서 온갖 역경을 다 버팀에도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공부.





그 시절에 쓴 책만 해도 20권이 넘는다. 대표작 <목민심서> 도 단연 그때 집필한 것이다. 지옥 같았던 그 세월이 만든 명저다. 




오늘날의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수많은 질문 중 떠오르는 것이 나는 과연 자식이 생긴다면 어떤 것을 물려줄 것인가?



  많은 재산과 집, 땅을 물려줘 자식에게 풍족한 생활을 이어나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적으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정신과 독서와 배움을 통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 삶에서 찾아오는 고통이라는 것이 매번 나쁘지만은 않다는 삶의 지혜를 물려 줄 것인가.. 





  독서와 글쓰기, 배움의 자세와 배움을 통한 일상의 적용만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길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돈은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 같다. 대부분 일시적일뿐, 돈은 오히려 불안과 갈등 욕심만 일으킬 뿐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 다산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이어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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