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밥이나 먹자."
친구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 쌀국수를 시켜 한두입을 밀어 넣는데 속이 매스꺼웠다. 유난히 많아 보이는 국수를 고스란히 남기고는 친구의 그릇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침에 보냈던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저녁에 잠깐 만날 수 있다고 답장이 왔다. 정확히 몇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저녁까지는 한참 남았기도 해서 하염없이 걸었다.
친구랑 있을 땐 조금 진정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걸은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다시 몸서리치고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딱 뭐라고 명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뒤섞였고 생각들이 늘어섰다. 계속해서 걷는 중에 화가 향하는, 물음이 벗겨지는 곳에 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때문에 내게 향했던 요구들에 대해 부정하던 모습들은 결국 온전한 강요였다.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식의 논리가, 서로의 모습을 존중하며 배려하자라는 일방적 이해의 방향엔 역시 강요가 들어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더 큰 이해들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웠겠다. 서운했겠다. 그리고 상처였을 수 있겠다.'
내 머릿 속에는 미안했던 일들, 사실 얼만큼은 후회하고 있었던 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줬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금방 서로를 추월해 경쟁하듯 앞으로 나아가는 두 다리처럼 한번은 원망이, 그리고 한번은 미안함이 걷는 그 한참 동안 내 안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또 밀려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