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계란

우리 할머니는 귀가 안들린다.

by 이생

우리 할머니는 귀가 안들린다.


무언가 대답 해야할 때엔 몇번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보면 그제야 겨우 듣고는,

알겠다고, 고맙다고 대답을 해주신다.


내가 집에 있을 때면 자꾸만 나를 찾고 하는 통에 가끔 짜증도 나고 괜히 큰소리도 낸다.

그래도 할머니는 나를 찾고, 묻고 한다.


종종 할머니는 내 기분은 아랑곳 않고 찬송가를 부른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그럴 때면 나는 방문을 닫고 음악을 키운다.

내 쉼에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우리 할머니는 귀가 안들린다.


집을 나설 땐 팔이든 다리든 흔들고 이만큼 손을 흔들어 보인 후에야 대강 내가 나가는구나 아시고는,

잘 다녀오라고, 일찍 들어오라고 대꾸를 해주신다.


가끔 꼭 나가야 되냐고, 집에 있으라고 하는 말에는 대강 손사래를 치며 얼른 집을 나선다.

그래도 할머니는 잘 다녀오라고, 일찍 들어오라고 닫히는 문을 향해 내어 놓는다.


종종 할머니는 내 기분은 아랑곳 않고 찬송가를 부른다.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그럴 때면 나는 현관문을 닫고 집밖을 향한다.

내 삶에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우리 할머니는 귀가 안들린다.


가족이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릴 때엔 세로로 쓰여진 큰 성경책과 마이크 달린 보청기를 꼭 챙기시고는,

가만히 성경책에, 보청기에 애를 쓰신다.


찬송을 부르면 박자도 음정도 틀려서 가족들과 꼭 맞게 끝난 적이 없다.

그래도 할머니는 끝까지 부르고 열심히도 부른다.


종종 할머니는 내 기분은 아랑곳 않고 찬송가를 부른다.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그럴때면 나는 내 노랫소리에 집중한다.

내 생각에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우리 할머니가 들리지 않는다.


괜히 주변에 눈치 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지 않고,

하던 일을 멈추고 가야 했던 귀찮은 물음들도 없다.


뒤늦게 집을 나설 때 굳이 나간다고 알리지 않고,

귓등에 닿아 불편한 마음으로 서둘러 문을 닫게 하던 배웅들도 없다.


종종 할머니는 내 기분은 아랑곳 않고 찬송가를 불렀다.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그런데 이제와서 내가 찾고, 묻고 한다.

그 삶을 들어보려 애를 쓴다.




하얀 국화꽃에 둘러 쌓인 할머니 앞에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언젠가 들어봄직한 위로의 말이 들린다.

알 것 같은 숫자가 들린다.


'301장 찬송 부르시겠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왜이렇게 못부르겠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많이 불렀는데 왜이렇게 안나오는건지 모르겠다.


정말 잘 부르고 싶은데,

정말 잘 부르고 싶은데.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 날로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우리 할머니가 들리지 않는다.


그토록 바라던 고요함 속에서,

후회로 변해버린 미뤄둔 다짐들 앞에서 생각한다.


들리지 않은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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