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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Joonhee Apr 10. 2018

작가 엘리자벳과 만나다

삶, 죽음 그리고 슬픈 광대

작년 말, 1인 출판사 마기콘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페이스북에 떠오른 그 이벤트가 흥미로워 호기심에 관심을 표시했는데, 낯선 한국인 한 분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 만날까요?


장미경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그림책 <나는 죽음이에요>의 번역가다. 낯선 노르웨이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데 그림책 번역가라니 신기했다. <나는 죽음이에요>는 몇 개월 전 나온 신간이라 잘 모르고 있던 책이었지만 다행히 출판사 사장님 스베인(Svein)이 한국어 책이 있다며 창고에서 꺼내 보여주어서 그 책을 접하게 되었다. 한 장 한 장의 아름다운 그림과 정제된 글이 결코 가볍지 않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꼭꼭 씹어 넘겨야 했다. 죽음을 어쩜 그렇게 솔직하고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죽음'에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줄이야! 그림책은 한 편의 시였다. 그 책과 함께 작가는 <나는 삶이에요>, <나는 광대예요>라는 책도 썼다. 이 두 권의 책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은 안 되었다.


그 날 장미경 선생님은 저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작가 엘리자벳은 예술기획가이기도 한데, 특히 어린이 병동의 아픈 아이들 앞에서 광대 공연을 많이 한다고 했다. 아픈 어린이들을 만나는 일처럼 야속하고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우스꽝스러운 광대 복장을 한 엘리자벳은 분장으로 슬픔을 가린 채 춤추고 연주하고 노래하며 생과 사의 기로에 선 그 어린아이들 곁을 지키며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했으리라.

그래서 나온 세 권의 책 <나는 삶이에요>, <나는 죽음이에요>, <나는 광대예요>는 광대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마침 오슬로에 있는 '문학의 집 litteraturhuset'에 작가가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날의 일정 확인도 없이 그리고 망설임 없이 참가신청을 했다.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우리는 드디어 만났다.

처음 본 엘리자벳은 광대와는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웠다. 그녀는 광대 옷을 입고 아이들 앞에 섰다. 잔잔한 기타반주에 맞추어 45분가량 공연이 계속되었다.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인형, 하늘하늘 깃털, 아코디언이 등장했다. 그녀는 어린 아이들 앞에서 유쾌하고 아름답게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와 함께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행사가 끝났고 나는 수줍게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팬입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엘리자벳이 적잖이 놀란 듯했다. 가져온 책에 정성 들여 사인을 해주었고 사진도 찍었다. 우리는 따뜻한 날, 차 한잔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얼마 전, 강원국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 강연에서 '잘 살아온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다'라는 얘기를 했다. 이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엘리사벳을 만나며 이 말이 더욱 맞는 말인 것 같이 느껴졌다. 내가 이 책에 감동을 받은 이유 역시 그녀의 아름다운 삶이 곧 이 그림책이었기 때문이리라. 아름답고 슬픈 광대 엘리자벳. 아름다운 이야기 꾼이 있는 이 세상을 나는 더 사랑하게 되었다. 따뜻한 어느 날, 이 아름답고 슬픈 광대 엘리자벳과 차 한 잔 할 날을 기다린다.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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