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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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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May 03. 2020

15. 두부야채전

2020년 5월 3일 일요일 저녁


냉장고를 열어보니 유통기한이, 자그마치 열흘이나 지난 두부가 한 모 남아있다. 포장도 뜯지 않은 것이니 표시된 유통기한보다는 오래 살아남겠지? 그래도 열흘이 넘도록 살았겠어? 불안한 마음으로 포장을 뜯었다. 물을 버리고 냄새를 맡아보니... 어라? 오히려 훨씬 진하고 고소한 향이 느껴진다. 그냥 두부만 먹기엔 불안해서 전을 부쳐 먹기로 했다. 손으로 두부를 으깨고, 부침가루를 좀 넣고, 계란을 하나 풀고, 냉장고에 남아 있던 야채들을 다지듯이 썰어 넣었다. 잘 섞은 다음 소금, 후추, 간장, 멸치액젓으로 밑간을 했다. 한입에 먹기 편한 크기로 전을 부쳤다. 솔직히 말하면 뭐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그래도 두부랑 야채 덕분에 식감은 괜찮았던 전이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기 전에 담배를 한 대 태우러 집 앞에 내려갔다. 응? 이런 외진 동네에 밑도 끝도 없이 작은 캠핑카가 한 대 서있다. 환하게 불이 켜진 캠핑카 안에는 작은 티비가 켜진 것이 보이고, 서너 명의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슬리퍼를 신고 가로등 아래 약 삼 미터 정도를 왕복하면서 담배를 태웠다. 습하고 축축한 공기와 서늘한 바람이 만나 시원하면서도 깔끔하지만은 않은 묘한 기분이 분다. 저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한 가족이겠지? 연휴를 맞아 캠핑카를 이용해 여행하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도 돌아다닐 수 있겠구나. 전혀 '캠핑'과는 거리가 먼, 도시 외곽의 공사 예정지 허허벌판이지만 잠깐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아저씨의 눈빛은 즐겁게 반짝이고 있었다. 당장 달려가서 나도 끼워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의 분위기.


담배 한 대를 태우고 다시 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계단을 걸어 올라오니 싱크대 안에 담겨있는 설거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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