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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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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May 11. 2020

17. 손님이 돌아간 다음의 밥상

2020년 5월 11일 월요일 저녁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 아, 봄바람이 불었나 - 친구들이 자주 방문한다. 지난 금요일 급작스레 연락해서는 '내일 내려간다~!'라고 말하고 찾아온 친구들을 위해 급하게 반찬을 좀 만들었다. 먹고 싶은 걸 알아서 사 오라고는 했지만, 상 위에 덩그러니 한두 접시만 올려둘 수가 없으니 같이 올려 둘 거리를 만든 거다.


시금치가 싸길래 한 단 무치고, 오이가 엄청나게 싸길래 좀 무쳤다. 진미채 볶음을 좋아한다는 녀석이 있어서 남아 있던 진미채도 모조리 볶아 버렸다. 미리 만들어 뒀던 건새우 볶음이나 멸치볶음, 무생채를 더하니 뭐 그럭저럭 구색은 갖출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친구들이 사 온 불고기와 쭈꾸미 볶음을 더해서 저녁을 먹고, 야식으로는 감바스 알 아히요를 만들어 줬다. 다음날 아점으로는 냉면 육수에 소면을 말아서 냉국수를 먹여 보냈다.


모두 돌아간 다음, 냉장고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반찬들이 가득해졌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밑반찬 가득한 식탁을 차렸다. 국이 필요했는데, 뭔가 끓이기가 귀찮아서 찬장에 넣어뒀던 레토르트 알탕을 데웠다. 독거노인 혼자서 먹는 상이 이렇게 화려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상차림. 이것도 다 친구들 덕분인가.


오늘은 종일 일자리를 알아봤다. 이사를 각오하면서 전국구로 뒤져봤으나 마땅한 자리가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서울로 돌아갈까? 서울에만 가면 뭔가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왜 마지막 보루처럼 서울을 남겨두는 걸까? 아, 이런 생각을 하면 다시 속이 답답해진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숨겨놨던 위스키를 한 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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