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3일 점심
가끔 TV에서 개그맨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먹다 남은'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지만 나 같이 입이 짧은 사람들은 오히려 배달 음식의 '양'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작은 것을 시켜도 혼자서 다 먹을 수가 없다. 어제저녁 갑자기 회가 먹고 싶어서 광어를 작은 거로 하나 주문했는데, 당연하게도 먹다가 남았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소면을 삶아 물회를 말았다.
광어회를 주문했을 때 함께 온 깻잎과 상추를 함께 이용했고, 오이와 양파는 마침 냉장고에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물회 육수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는데, 냉면 육수에 어떻게든 빨갛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어 고추장, 간장, 식초, 설탕, 참기름 등을 이용해 소스를 만들려다가 그렇게 하면 결국 초고추장과 꽤 비슷한 맛이 되지 않나? 싶어 시판되는 초고추장을 베이스로 사이다를 조금 섞어서 짠맛을 줄이고 단맛과 시원함을 더했다. 냉면 육수는 미리 냉동실에 얼려두어 살얼음이 낀 물회를 만들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맛있는 물회 집의 육수에는 한없이 모자란 맛이었지만, 시원한 육수에 소면을 말아 야채들과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먹을 만 했다.
오랜만의 칼질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고, 이불보를 빨아 널었고, 묵은 공기를 싹 환기하고,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대청소를 했다. 이불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던(귀찮았던, 싫었던, 무서웠던, ...) 지난 몇 주를 훌훌 털고 싶은 날이다. 어느새 6월이 지나간다.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