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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Oct 27. 2020

37. 도쿄에 도착했다는 기분은 집 앞 공원에서

우에노 공원과 시노바즈 연못

10월 12일, 서울에서 출발해 미야코지마에 도착했다. 이후 이곳저곳을 돌아 11월 4일, 도쿄에 도착했으니 여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3주가 지난 셈. 친구네 집에 짐을 풀고는 말 그대로 며칠 동안 뻗/어/있/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여독을 풀어야 했다. 이곳이 도쿄인지 서울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며칠이 흘러갔다.


며칠 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고, 친구 집에서 먹고 자고 씻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난 지금 귀국한 것이 아니라 도쿄에 있다는 걸. 아직 나의 여행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와 템포가 좀 달라졌을 뿐이고,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곳에 와 있을 뿐이었다.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 내가 '도쿄'에 왔다는 것을 깨닫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도쿄 타워 같은 곳을 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차피 도쿄는 꿈에 그리던 여행지가 아니었고, 나에게 '도쿄'라는 단어는 특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평일 낮이었지만 우에노 공원에는 사람이 많더라.


그저 어딘가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우에노 공원에 있는 도쿄도립미술관(공식 명칭은 도쿄도미술관 東京都美術館 인데, 왜인지 도쿄도립미술관이라고 부르고 싶다)에서 고흐 관련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시의 제목은 [ゴッホ展 巡りゆく日本の夢]. 멋대로 의역하면 [고흐전 - 돌고 도는 일본의 꿈].


친구네 집은 닛포리역. 목적지인 우에노역까지는 야마노테선으로 딱 두 정거장 걸린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도쿄의 지하철에 아직 익숙해지기 전이지만, 겨우 지하철 두 정거장. 게다가 다른 도시에서 이미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본 경험도 많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우에노 공원에는 미술관이 많은데, 공원 입구에 매표소가 있어서 미리 사면 편하더라.


우에노역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와 큰길을 건너니 바로 우에노 공원. 사람들을 따라 걷다 보니 앞에 매표소가 하나 보이길래 '이게 뭔가...?' 하면서 분위기를 살폈다. 오호! 마침 내가 보려고 하는 전시의 표를 팔길래 미리 구매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각 미술관의 티켓을 미리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판매 대행소(?)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되는 듯. 참고로 우에노 공원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엄청 많다. 르꼬르뷔지에가 설계하고 모네의 [수련], 로댕의 [지옥의 문] 등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 서양 미술관(国立西洋美術館)을 비롯해 도쿄 국립 박물관(東京国立博物館), 국립 과학 박물관(国立科学博物館) 등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는 데다가, 각각의 미술/박물관에서 하나의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니 보고 싶은 전시가 어디에서 하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 서양 미술관. 르꼬르뷔지에가 설계했다는 걸 알았었다면 사진을 더 찍어올 것을...


매표소를 지나니 바로 국립 서양 미술관이 보인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걸으며 지나가느라 몰랐는데 [호쿠사이와 자포니즘], [지옥의 문에게 인사] 등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구나(사진을 보고 급하게 내 맘대로 의역해봤다;;)...


스타벅스 우에노 공원점에서 바라본 광장


평일인데 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지? 스타벅스 우에노 공원점에는 말 그대로 사람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주문을 하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받아서 야외 테이블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아직 전시를 보기 전이지만 이미 마음은 도쿄에 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이미지나 장면을 보는 것이 '도쿄'를 실감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닛포리에서 지하철 표를 사고, 개찰구를 지나 한자와 일본어로 적힌 승강장을 확인한 다음 우에노로 가는 야마노테선을 탔다. 겨우 두 정거장이지만 한자로 적인 노선표를 수십 번 확인하면서 다음 역을 되뇌었다. 우에노역에 내렸더니 사람들이 많아져서 여기저기서 들리는 일본어.


이런 평범한 장면들이 오히려 나를 도쿄에 데려다 놓았다. 거기에 맑은 하늘과 사람은 많지만 한적한 공원의 분위기가 더해져 '지금 나는 여행 중'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고흐 관련 전시가 진행 중이던 도쿄도립미술관


고흐의 일본 사랑이 남달랐다고 믿는 일본 사람들은 고흐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런 전시도 기획할 수 있었던 걸까? 고흐의 작품에서 일본의 흔적을 읽고, 비슷한 시기 일본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면서 그 연관 점을 찾아보는 전시였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얼마나 고흐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규모가 큰 전시장이었고, 전시된 작품의 수도 많았다. 약 40여 점의 고흐 작품을 비롯해 일본 작가의 작품도 50여 점이니 합계 100여 점이 전시된 전시회였다. 그 외에도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한 근대 일본 지식인들의 사료까지 더해 모든 걸 관람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전시. 꽤 부지런하게 걸으며 관람했는데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기


전시를 보고 나와서 어디로 갈까? 잠깐 고민했다. 우에노 동물원이 엄청 크다고 하던데 거기에 가볼까 했지만 딱히 땡기지는 않아서 지도를 보다 보니 공원의 서쪽에 시노바즈 연못(시노바즈노이케 不忍池)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연못 쪽으로 향했다. 역시 물을 좋아하는 걸까.


우에노토쇼구(좌) 칸에이지 5층탑(우)


연못 쪽으로 걷다 보니 오른편에 뭔가 수상한(?) 오솔길이 보인다. 신사 같은 게 있을 법한 깃발들이 걸려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보니 길 끝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져서 잠깐 발길을 돌렸다. 서서히 단풍이 들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의 끝에는 우에노토쇼구(上野東照宮)라는 신사가 있었다. 궁(宮)이라는 한자를 쓰고 있는 데다가 금박으로 칠한 화려함을 보니 뭔가 천황과 관련이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잠깐 멈춰 서서 길거리 공연에 손뼉을 쳤다.


자, 다시 연못을 향해 가는데 이번엔 광장에서 한 길거리 저글러가 눈길을 붙잡는다. 화려한 공연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집중하고 있는 표정에 정감이 가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공연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구경하면서 손뼉을 쳤다. 아마 이곳이 서울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 분명했을 텐데, 이런 것이 여행자의 여유인 걸까.


시노바즈 연못 옆의 다이코쿠텐도

본격적으로 시노바즈 연못가를 산책하기 전에 눈에 띈 것은 다이코쿠텐도(大黒天堂). 일본의 칠복신(七福神) 중 하나인 다이코쿠텐(大黒天)을 모시는 사당이라고 한다. 칠복신은 일본 민간 신앙에서 복(福)과 관련된 일곱 신을 말하는데 유명한 에비스(恵比寿)도 그중의 하나. 다이코쿠텐은 금전운과 사업운을 관장한다고.


호수에서 오리배를 탈 수 있나 보다


오후 세 시가 되니까 해가 꽤 기울었다. 일본의 해는 역시 우리의 그것보다 조금 빨리 기운다. 아마 이제부터 급격하게 햇살이 '오후'라고 느낄 수 있게 해 줄 것이 분명했다. 시노바즈 연못의 입구에는 오리배 탑승장이 있었다. 오리배는 30분에 700엔. 직접 노를 저을 수 있는 보트도 있었다. 나는 후자를 더 좋아한다. 노를 잘 젓는다는, 근거가 빈약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 오리배는 보기보다 불편해서 열심히 페달을 밟다 보면 다리가 금방 아프다.


해가 살짝 기울어 한적한 분위기가 고조된 시노바즈 연못 산책


혼자 왔으니 보트나 오리배를 탈 건 아니었다. 연못가를 걷기 시작했다. 오전부터 걸어 다녀서 그런지 다리가 좀 피곤했지만, 연못의 풍경은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고 가고 싶은 풍경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집 앞의 올림픽 공원이 더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보는 풍경은 익숙한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맛이 있다.


도쿄는 아직 낯선 곳이다. 그동안의 일본 여행 중 한 번도 찾았던 적이 없었고, 출장으로도 와 본 적이 없었다. 이제 겨우 도착하고 며칠이 지났을 뿐이고, 본격적인 외출은 처음이었으니까 오늘의 풍경은 단순한 '한적한 연못가 산책의 풍경'만은 아니었다.


이제야 겨우, 도쿄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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