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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Jun 28. 2024

애정하는 가게에서의 폭주

짧은 도쿄 긴 교토 (8) - 06.27 / 우즈라야 그리고 부도야

오전에는 방에서 뒹굴 거리며 작업(브런치에 글 올리려면 사진 정리도 좀 해야 하고, 글도 이렇게 적어야 하고...)을 좀 하다가 오후가 되어 오늘 저녁은 뭘 먹지? 라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방 밖으로 나가는 게 귀찮은 마음도 있어요. 이 멀리 교토까지 와서 이게 무슨 소린가 싶지만, 뭐 진짜 그렇습니다. 교토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이 좋은 거지 매일매일 비싸고 맛있는 것만 먹으러 나갈 수는 없잖아요. 교토는 물가가 비쌉니다.


여튼 그렇게 네 시쯤 됐을까? 오늘 우즈라야에 가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전화로 예약을 했어요. 일본에서 전화로 예약할 때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내 전화번호’를 불러줄 때입니다. 한국어로는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바로 튀어나오는 그 숫자들이 일본어로는 어버버 어버버 거리면서 나오거든요. 우즈라야는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냥 이름과 시간만 알려주면 돼요. 당일 예약이라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예약에 성공했어요.


도쿄에서도 그랬고 이곳 교토에서도 그렇습니다. 요즘 일본은 웬만한 식당에 전부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사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하죠.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마음에 드는 식당을 발견했어요, 이런 게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다이소에서 필요한 거 사고, 여섯 시가 조금 되기 전에 우즈라야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이 가게에 왔던 게 언제였을까요, 음... 십오 년 전? 더 됐으려나? 그때는 예약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고, 한국인이나 다른 나라의 관광객은 별로 찾지 않는 동네 가게였어요. 동반 출근하는 게이코나 캬바쿠라의 언니들을 볼 수도 있었죠. 한국의 모 블로거가 이곳을 자주 포스팅하면서 (물론 저도 그걸 보고 찾아왔었지만) 한국 손님들이 많이 늘고, 한국어 메뉴판도 생겼습니다.


아, 야키도리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꼬치에 꽂지 않고 접시에 바로 내어 줍니다. 하나씩 주문하면 딱 꼬치 하나에 꽂히는 정도의 양이라서 양이 매우 적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입이 매우 짧은 사람이고, 이 집의 양이 매우 적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후 나오는 모든 음식은 혼자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폭주’라는 단어를 썼어요...)






첫 잔으로는 화이트 와인을 글라스로 주문했습니다. 미국의 리슬링이라고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야마이모(마), 후리소데(어깨살)가 나왔네요. 야마이모는 어떤 야키토리집을 가도 주문하는 메뉴입니다. 후리소데는 자주 먹어보던 것이 아니라서 주문했는데 쫄깃하고 맛있더라고요.





시로네기(흰 대파) 구이는 시오(소금)와 쇼유(간장) 소스 두 가지 버전으로 나옵니다. 대파를 그대로 석쇠에 바싹 굽고 맨 바깥의 타버린 껍질을 벗긴 다음 잘라서 쿠킹호일로 만든 그릇(?)에 담아 더 익힙니다. 단맛이 아주 철철 흘러나오죠.





사사미(가슴살) 와사비는 살짝 익힌 가슴살에 와사비를 올려 먹습니다. 맛보다는 질감으로 먹는 부위인데 역시 그 익힘 정도가 예술입니다. 호르몬(내장)은 처음 먹어 보는데 곱창처럼 곱이 느껴져서 깜짝 놀랐어요. 닭한테 이런 부위가 있나? 육향도 세고 쫄깃합니다. 호불호가 있을 것 같은 부위.





두 번째 잔으로 카라구치(달지 않은) 니혼슈를 하나 추천받습니다. 하나가키. 무여과생주라고 쓰여 있네요. 우즈라야에는 많은 종류의 술이 준비되어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아주 퀄리티가 뛰어나요. 그래서 걱정하지 않고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성공이죠. 게다가 사용하는 기물들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절대 허투른 잔에 술을 주지 않아요. 니혼슈가 담겨 나온 잔도, 보세요. 우스하리 잔 같네요. 림이 엄청 얇죠. 저런 잔에 마셔야 술맛이 난다니깐요. 아, 또 달려 나가서 마시고 싶다.





세세리(목살)는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먹어본 부위인데요. 와, 이 탱글함과 통통함은 뭐죠? 아예 다른 요리 같은 느낌입니다. 게다가 그다음, 저 카와(껍질)! 엄청 두툼한 껍질을 제대로 바삭하게 굽는데 두툼하다 보니 그 안의 육즙이 쫙. 초강추 메뉴입니다.





저 작은(?) 불판 위에서 모든 손님의 요리를 준비합니다. 가게에는 대략 10개의 좌석이 있어요. 모두 바 좌석. 테이블은 없습니다. 숯불 밑에는 물을 계속 채워주시네요. 그래야 기름이 숯에 떨어져도 연기가 나지 않습니다.




나스(가지) 구이도 두 종류로 준비해 주시네요. 시오(소금)와 다시(양념). 아주 두툼하고 커다란 가지였어요.


그나저나 야키도리 집인데 유독 제가 야채를 많이 먹는 이유는 바로 ‘교토’이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교토는 야채가 맛있어요. 기존에 알고 있던 야채들도 맛이 아예 다른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교토의 야채는 아예 교사이라고 따로 부르는 단어가 있을 정도예요. 그리고 우즈라야는 워낙 잘 구워주는 집이니까요.





다음 잔으로 브루고뉴의 레드를 주문했어요. 알바가 작은 잔에 와인을 따르고 마스타가 마셔 보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제야 잔에 와인을 따르고 저에게 가져다줍니다. 허투루 술을 내놓지 않겠다는 마스타의 운영 방침이 느껴진달까요. 역시 믿음이 가는 가게입니다. 와인 잔은 잘토를 쓰시더군요. 잔 가득 꽃향기가 피어오릅니다. 완전히 제대로 열린 피노누아. 마셔보니 분명 브루고뉴 루즈 정도의 퀄리티인데, 이렇게 향이 잘 피어오르다니.


그린 아스파라거스는 옆 자리에서 주문한 걸 구우시는 장면을 보고 주문했습니다. 엄청 크더라고요. ㅋㅋ






이제 먹는 속도는 좀 느려지고, 마시는 속도는 빨라집니다. 브루고뉴의 레드를 마셨으니 다음으로 보르도의 레드. 이번엔 큰 감동은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잔도 퀄리티가 좀 다르네요. ㅋㅋㅋㅋ


재밌는 이름이 보여서 주문해 봤습니다, 잉카노메자메(잉카의 눈)라는 이름이 있길래 검색해 보니 감자 품종 중의 하나라네요. 버터를 함께 주셔서 뜨거운 감자에 버터를 녹여서 먹는데, 맛이 아주 독특합니다, 분명히 감잔데 고구마인지 헷갈릴 정도로 고구마 맛도 납니다. 재밌는 감자.


아, 우즈라야에는 한국어 메뉴판이 있는데요. 일본어 메뉴판과 한국어 메뉴판이 완전히 동일하진 않습니다. 특히 야채 메뉴가 많이 달라요. 한국어 메뉴판에는 4-5종류 밖에 없는데 일본어 메뉴판에는 10종류가 넘게 적혀 있습니다. 잉카노메자메는 일본어 메뉴판에만 있던 메뉴예요. 자가이모(감자)랑은 다른 메뉴... 일껄요?


여튼 그래서 뻔한 메뉴는 한국어 메뉴판을 보고 미리 주문하고, 먹고 마시면서 천천히 일본어 메뉴판을 번역합니다.






카네하치를 로꾸로 주문했습니다. 우즈라야에 처음 왔을 때 추천받았던 보리 쇼츄. 지금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보리 쇼츄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와(껍질)를 하나 더 주문했습니다.


술 네 잔, 그리고 요리 11개. 평소의 저라면 술이 더 많고 요리가 적었을 텐데, 오랜만이라 그랬나? 닭이랑 야채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쉴 새 없이 주문을 넣었어요.






평소보다 좀 거하게 먹었더니 배도 부르고... 2차를 갈까 말까 고민이 됩니다. 방에 들어가면 맥주도 있고, 와인도 있고, 안주도 있으니 그냥 방으로 갈까... 하다가 카모강을 보니 와인을 좀 더 마시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엊그제 찜해놨던 ‘부도야’라는 가게로 가봅니다.






마침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비어 있어서 예약 없이 방문했는데도 앉을 수 있었어요. 좀 불편한 자리이긴 했지만요. 우선 스파클링을 달지 않은 걸로 하나 주문하고, 안주로 치즈 모둠을 주문했습니다.


이곳은 관광객이 보이지 않았어요. 교토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인들로만 꽉 차 있었고, 대부분이 20대의 여성들이었습니다. 뭔가 동네의 힙하고 핫한 가게의 느낌? 날씨가 좋은 날 들러서 저녁을 먹고 싶은 가게였어요. 어? 오늘 저녁 먹으러 갈까...? 아, 예약이 필요하겠지...





화이트 하나, 레드 둘을 마셨는데요. 화이트는 루이 라투르의 그랑 아데슈 2021. 샤르도네인데도 마치 쇼블을 마시는 것처럼 청량하고 기분 좋은 와인입니다. 샤르도네 특유의 찝찔함이 없어서 좋았어요. 스페인의 레드는 라크리무스의 아파시오나도. 빈티지는 확인하지 못했는데, 템프라닐료가 75% 들어간 블렌딩인데 너무 강한 맛보다 끈적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나머지 25%의 힘일까요. 여기까지만 마시고 일어날까 했는데 치즈가 남아서 마지막으로 일본의 레드도 하나 주문해 봤습니다. 마루키 루즈라는 와인이었는데 서빙하시면서 딸기향이 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셔보고 웃음이 났습니다. ㅎㅎㅎ 나긴 납니다 분명히 딸기의 뉘앙스가 지배하고 있는 와인이에요. 근데 말이죠. 이거 와인이라고 해도 될까요? 과실주와 와인의 경계 어딘가에 있는 술입니다. 완성도가 좀 떨어져요.


여기까지 마시고 방에 들어와서 리즐링 남은 것까지 해치워 버렸어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방에서 뒹굴거리며 브런치에 글이나 쓰고 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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