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MBTI 뭐야?"라는 질문과 "너 완전 I 지? 나 극 E임" 같은 말, "나 F라서 이런 거 보면 눈물 나" 같은 말. 대한민국을 휩쓸고 간 MBTI 열풍에 대해서
며칠 전 서울 어딘가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분명 지난번 방문했을 때에는 자신이 태어난 해의 띠에 따라 여러 개의 통이 구분되어 있고, 각자 맞는 것에 돈을 넣으면 자신의 운세가 빨간 캡슐에 담겨 나오는 그런 형태였던 것 같은데, 다시 방문했을 때 본 운세 뽑기는 갑자기 MBTI 운세 뽑기가 되어 있었다. 사실 전공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겠지만, MBTI라는 것은 자신이 겪은 경험 혹은 사회환경 등으로 인해 일부 변화되기도 하는 터라 운세를 뽑는 용도로 활용되기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운세 뽑기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 기계에 돈을 집어넣고 있었다.
지금은 그 열풍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한 때는 '자신의 MBTI 뿐 아니라 세상 모든 MBTI 종류의 특성을 달달 외우고 있는 민족은 우리나라 사람들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 국민이 MBTI에 미쳐 있었던 때가 있었다. 내가 보기엔 마치 "나 A형이라 소심해" 혹은 "걔가 B형 남자라서.." 같은 말과 같은 수준의 유행이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MBTI가 굉장히 새로운 개념인 것 마냥 목숨을 걸었을까?
아마 우리는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간절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것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더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 내리지 못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MBTI 검사 한 번 만으로 내가 어떤 성격 유형의 사람인지부터 시작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두 알려주는 셈이다. 얼마나 편한가. 나를 알아가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몇 개의 문항에 생각나는 대로 답변만 잘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모두 알려주는데 뭐하러 갖가지 노력을 해 가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야 하겠는가.
그리고 MBTI 검사의 공통점이 있는데, 특성 간의 차이점에 대해 레벨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마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장 성공하는 유형' 등으로 이상한 차등을 일부러 두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외향인이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받아들여졌지만, MBTI세계에서는 I와 E로 나누어 내향인과 외향인의 구분만 둘 뿐 그것에 대한 어떠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MBTI 유형이 각자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더 낮고 높은 것이 아닌 모두가 공평한 사회에서 그저 '다른 성향'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사람들을 MBTI에 미치게 만든 대표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다.
요즘에 우리들은 드러내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을 드러내고, 꾸미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관심 있어한다. 오죽하면 다꾸 (다이어리 꾸미기), 폴꾸 (폴라로이드 꾸미기) 같은 것들이 성행하는 걸로도 부족해 자신의 상품을 직접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제품들이 우후죽순 몰려나오겠는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꾸미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면 무척 좋고 바람직한 문화임이 확실하나, 자신이 지향하는 그 어떤 것을 위해 과장하고, 없는 것을 만들어다 쓰고, 무언가를 따라 하려 애쓰기 위한 일환으로 꾸며댄다면 그것이야 말로 불행의 장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