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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Oct 09. 2020

무릉도원에는 고흐의 복숭아나무가 자란다.

고흐의 <복숭아나무>와  안견의 <몽유도원도>

복숭아꽃이 활짝 핀 곳에 가보셨나요?

빈센트 반 고흐의 복숭아나무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Peach Tree in Bloom (in memory of Mauve) , 1888,  73 x 59.5 cm Rijksmuseum Kröller-Müller

  

1888년 햇살 좋은 날에, 고흐가 그렸겠지요. 그는 이 복숭아나무를 그리고 나서

아마 내가 그린 풍경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풍경화가 될 것이다

라고 테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도 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 작품의 부제는  in memory of Mauve.입니다.



작품 왼쪽 아래쪽에  "모베를 회상하며"라고 적혀 있습니다.

안톤모베는 네덜라드 화가로, 네덜란드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을 그렸는데, 고흐의 사촌누나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무명의 고흐에게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도록 가르쳐준 화가입니다.


보기만 해도 행복감이 전해지는 복숭아나무.

이 그림이 그려지던 1888년에 안톤모베가 세상을 떠났고 그가 죽고 나서 고흐는 이 그림을 그의 아내였던 사촌누나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림을 배우던 고흐와 가르쳐 주던 모베는 결국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고 각자의 길을 갔지만 많은 미술사학자들이 고흐의 작품에서 모베의 영향을 느낀다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그와 사이는 멀어졌지만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스승에게  꽃으로 고마웠던 마음을 하지 않았을까요.


막 과수원 그림을 그렸는데 분홍색 복숭아나무들과 너무나 창백한 분홍색 살구나무는 잘 그려졌어. 지금은 수많은 검은 가지가 있는 연노랑 자두나무를 그리고 있어.
너무 많은 캔버스와 물감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냥 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야.”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예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열정이 느껴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 Peach Trees in Blossom, 1888, 59.5 x 80.5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빈센트 반 고흐, Peach Trees in Blossom, 1889,  65 x 81 cm,  Courtauld Institute of Art, London, UK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복숭아나무밭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라고 불리는 곳.


낙원, 파라다이스, 유토피아를 뜻하는 무릉도원,

그 무릉도원의 도자가 한자로  桃 복숭아 도입니다.


무릉도원은 복숭아꽃 피는 아름다운 곳이란 말로, 이 말은 원래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이라는  곳에 사는 어부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어느 날, 그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는데 물 위로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고 아주 좋은 향기가 났다고 합니다. 그가 향기를 따라가다 보니 작은 동굴이 나왔는데, 그곳에 흐드러지게 만발한 복숭아나무가 피어있었습니다.

진나라 때 난리를 피해 속세를 떠나 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낙원이 있었지요.


어부는 이곳에서 머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이 곳을 떠나는 날 사람들은 그에게 이 곳의 존재를 비밀로 지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이 너무 신기했던 어부는 마을에 돌아와 마을 관리에게 이 곳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과 어부는 다시 이 곳을 찾고자 길을 떠났으나 그 곳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비밀을 지켰다면 그는 다시 무릉도원을 갈 수 있었을까요?


도연명이 말하고자 했던 무릉도원은 갈 수 없는 이상향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였지요.


꿈속에서나마 만나고 싶은 무릉도원이 안평대군(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꿈에 나타났습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이르지 못하는 그곳을 꿈속에서 가게 된 안평대군은 그곳을 잊을 수 없어 안견을 불러 자신의 꿈을 화폭으로 옮기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복숭아 도원에서 노니는 꿈을 소재로 그린 그림)입니다.


안견, 몽유도원도, 1447, 38.7 ×106.5cm,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의 발문이 적혀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 이런 꿈같은 낙원이 있단 말인가
숨어 사는 사람들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한데
그림으로 그려 놓으니 얼마나 좋은가
천년을 이대로 전하여 보아야겠네


조선 전기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은 3일에 걸쳐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노닐던 무릉도원을 큰 화폭에 완성시켰습니다.



  유토피아(utopia)는 영국 사상가 토마스 모아 가 1516년에 만들어 낸 말로,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ou와 장소라는 뜻의 topia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인 이상향을 의미합니다. 바로 무릉도원이지요.


어디에도 없지만 누구나 꿈꾸는, 완전한 곳.


그곳은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 가고 싶은 지상낙원일 수도,  혹은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죽음 그 너머 일 수도 있습니다.

가질 수 없는 것, 만날 수 없는 사람, 갈 수 없는 곳.

이것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지만 때로는, 닿을 수 없음이 더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꿈꾸는 것이 있어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니까요.


현실에서는 갈 수 없는 곳 유토피아,
갈 수 없기에 그곳을 꿈꾸며 살아가는 현실의 삶이 유토피아의  긍정적인 힘이 발현되는 지점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산다.
Vincent van Gogh,  Peach Tree in blossom


고흐의 유토피아에는 무명의 자신을 알아봐 주고 그림을 가르쳐주던,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었던 안톤 모베가 있고, 안평대군은 현실에서 갈 수 없었던 그림 속 그곳에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의 유토피아에는 무엇이 있나요?

저의 유토피아에도 꼭 만나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밤 잠이 들면,  

 몽유도원을 꿈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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