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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쇼 Mar 29. 2018

아늑한 바닷마을 스콘

이스트본 - 디킨스 티 코티지

이른 아침 학원 수업을 위해 남영동에 간다 . 세상에 , 뿌연 미세먼지와 황사 범벅인 이 아침에도 마스크 없이 조깅하는 외국인 커플이 있다니 ! 미군기지로 출퇴근 할 것으로 보이는 단단한 그들의 용모를 모래처럼 흐리게 뒤덮는 공기를 보고 순간 여긴 이라크 사막인가 싶었다 . 맞다 . 나도 1미터 앞조차 보이지않는 안개를 뚫고 해안절벽을 걸었었지 ...


더 그레이트 이스케이프(영국 뮤직 컨퍼런스 & 쇼케이스 페스티벌)에 2년 연속 초청 되어 브라이튼(Brighton) 이란 도시는 익숙해졌기에 해안절벽 세븐시스터즈(Seven Sisters Park)에 이번엔 꼭 가보리라 다짐하며 앞당겨 브라이튼에 도착했다 . 이른 새벽 숙소를 떠나 세븐시스터즈로 향했지만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ㅠ 안개가 너무 심해 시야가 좋지 않았고 일부구간은 앞도 보이지않았다 . 해안절벽 걷다 추락사한 한국여성에 대한 보도가 나오는 건 아닐까..., 몇번의 고비끝에 구글맵을 친구삼아 안개 속을 뚫고 두 시간 조금 더 걸려 무사히 세븐시스터즈를 주파 . 영국 드라마 , 영화 속 자주 등장하는 내 로망의 장소였지만 날씨 때문에 아무도 없어 좋은게 아니라 겁이 나 혼났다 . 학술조사중인듯한 캠프족을 중간에 한 번 만나 눈물 날 뻔 .

어쨋든 벌링갭(Birling Gap)까지 도착해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버스 정류장까지 한 시간을 걸었다 . 길 양쪽 드넓게 펼쳐진 양과 염소 방목지를 보며 동물들과 이야기하고 , 코스모스 한 송이를 꺽어 흔들며 노래하는 광년이가 되어 안개 속 아무도 없는 세븐 시스터즈와 벌링갭 로드를 전세 낸 기분으로 만끽했다 .

- 안개자욱한 세븐시스터즈와 방목양들 -

 

♪ Declan O'rourke - Big Bad Beautiful World https://youtu.be/nfrspOwNMAc


이스트 딘(East Dean) 정류장에서 이스트본(Eastbourne)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한 숨 돌린다 . 광장과 쇼핑타운과 이스트본 대학으로 이어지는 곳곳 작고예쁜소담스러운 동네구경 집어치워 , 우왕 배고파 ㅠ !! 숙소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와 텀블러 속 뜨거운 커피는 동난지 오래 . 거짓말처럼 뱃속에서 꼬륵 소리와 함께 고소한 내음과 쌉싸레한 향이 코 끝에 작렬했다 . 킁킁 . 어디지 ? 뭐지 ?? 아,현기증 ! 킁킁킁 .

 - 국영수와 시사에 약한 나는 평소 엄청난 백치미(이름에 '미'가 들어간다)를 자랑하지만 후각만큼은 써먹을 만 했다 . 저 멀리 윤동주 기념관에서부터 부암동 언덕을 걸으며 닭튀김 냄새를 맡고 기어이 닭집을 찾아들어가는 한 마리 삵과 같은 후각을 지녔다 (그곳은 치킨 성지'계열사') . -


두리번거린 끝에 방향을 잡고 , 찾았다 !! 디킨스 티 코티지 ( Dickens Tea Cottage )


홀홀 단신 영어도 못하는 동양 여자가 가게의 문을 빼꼼 열자 그 용기를 알아챈듯 둥글둥글 초로의 부부가 멋진 미소와 악센트로 HELLO를 시전한다 . 수줍게 따라 외쳐보는 헬로우 . 편한 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쳐에 늠름히 가게 정가운데에 앉았다 . 점점 눈에 들어오는 오래된 상점의 아늑한 분위기 , 옆으로는 갓 구운 케익들이 유리뚜껑에 덮여 있었고 주방에선 하얀 반죽을 툭툭 치대고 있었다 . 메뉴판을 주시며 '천천히 보렴 Dear~' 라고 웃어주는 아주머니께 덩달아 생긋 웃어드렸다 . 머나먼 여정임에도 아직 오전 11시 . 러쉬는 아니었고 메뉴들도 크레페, 타르트, 샌드위치, 샐러드로 구성되어있었다 . 이윽고 내 눈에 담긴 '2 Scones' 라는 글자 . 영국에서 물론 스콘을 먹어봤지만 가정식 스콘은 처음인 것 같았다 . 더군다나 이 지역 '서섹스(Sussex)' 이름이 붙은 < SUSSEX CREAM TEAS > 라니 ! 2개의 스콘과 잼 , 크림 그리고 티로 구성 된 애프터눈티세트였다 .

- [디킨스 티 코티지] 모습들 -

잠시 후 투박하고 양 많아 보이는 티팟과 함께 영국의 크림 티가 나타났다 . 아침 내내 염분 안개 , 해안절벽의 무서운 바람을 온 몸으로 뚫고와 서늘함이 감돌던 내 몸은 모처럼 커피가 아닌 홍차와 스팀밀크로 녹여졌다 . 뜨끈한 얼그레이티를 한 모금 마시고 있으니 스콘들이 온다 . 두둥 ! 주먹보다 큰 왕스콘 두 덩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 역시 이 곳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잼이 가득 나왔다 . 평소에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천만 다행인것은 이 지점에서 백치미가 좀 상쇄 된다는 건데 , 무뚝뚝한 스콘의 맛을 끌어올리는 '클로티드 크림(Clotted cream)'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지역 -이스트본과 브라이튼을 아우르는- 남서부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있기에 기대가 컸다 . 앞쪽에 앉은 다른 손님께서 그거 진짜 맛있다고 여기 잘 왔다고 엄지를 척! 올려주셨기에 보기만 해도 맛있는 상태 . 고소하고 상큼하고 쌉쌀한 향을 만끽한 뒤 포실포실한 스콘을 쭉- 반으로 갈라 클로티드 크림을 처발처발 , 크와앙 한 입 가득 베어물고 씹었다 . 흐으흉~ 진실의 소리가 새어나오며 오늘의 머나먼 여정이 , 안개 자욱한 세븐시스터즈와 양들과의 대화가 헛되지 않았음을 . 다신 없을 인생 스콘을 맛보고 있음을 간증했다 .

- [디킨스 티 코티지]의 SUSSEX CREAM TEAS -

부부사장님은 내 반응에 만족한 듯 웃었고 , 앞 손님도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동네의 명소가 다 그러하듯 손님도 가게를 대표한다 .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 어디서 사는 누구인지 , 이 가게의 자랑까지 맡아 설명해주셨다 . 영어로 말 하는 건 너무나 어렵지만 뭐라고 하는지는 느낌적 느낌으로 알아듣는지라 왜 이 가게의 이름이 Dickens Tea Cottage 인지도 알게 되었다 . 1700년대에 지어진 이 건물은 그 옛날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머물며 글을 쓰거나 구상했던 곳이라고 한다 . 50년 동안 티 하우스를 이어오며 이 가게안에 있는 디킨스와 관련된 여러 소품들과 소장본들덕에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한다 . 그 이야기를 듣자 글을 쓰고 있는 A도 함께 왔다면 참 좋아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멋진 모닝커피와 애프터눈티 세트 , 바닷바람을 맞으며 디킨스의 추억에 함께 할 수 있는 곳 . 꼭 데리고 와야지 . 돌아가는 길에 우체국에서 엽서라도 사야겠다 .

- 이스트본 피어(Eastbourne Pier) -


p.s

[디킨스 티 코티지]는 국내엔 좀처럼 소개 되지 않은 곳이다 . 그 무렵(2015)엔 동양인 방문 자체가 이색적인 일인 것 같았다 . 그래서 내 테이블 위가 아닌 곳들은 몰래몰래 사진을 찍었다 . 구글과 Yelp , 트립어드바이저 등에서는 굉장히 좋은 평을 얻고 있는 곳이다 . 이른 아침에 열어 점심 장사를 마치면 금새 문을 닫는다고 하니 여행 중 가보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 런던에서 당일치기로 세븐시스터즈에 들리는 분들께서도 디킨스 티 코티지 포함 일정이 가능하다 . // 브라이튼 역에서 세븐시스터즈로 , 세븐시스터즈에서 이스트본으로 , 이스트본 피어(Eastbourne  Pier)에서 다시 브라이튼으로 돌아오는데에는 원데이버스티켓을 사용했다 . 브라이튼 기차역 내 여행자센터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전체적 이동경로와 볼거리 , 팁은 '정리여행자' 카테고리에 업데이트 해 보겠으나 언제가 될지...


Dickens Tea Cottage

5 South St, Eastbourne BN21 4UJ

https://goo.gl/maps/niRhJS78ch42


글/사진 ㅣJumi Kim https://brunch.co.kr/@zzu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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