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선녀전 완결에 바쳐
여행 뿐 아니라 작은 일상 속에서도 틈틈의 ' 기록 ' 이 중요한 이유는 (치매 예방에도 좋지만) 뭐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 음악을 듣고 , 영화를 보고 , 책을 읽고 ,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것들을 '아, 좋다!'고 마냥스쳐보내기엔 아까운 것들이 자꾸 생기니까 . 겪은 것들을(=경험) 내 안에서 다듬어 말하거나 쓰거나 그리거나 부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소화 해 내기까지.의 활동은 미욱할지언정 분명 새 이야기가 된다 .
행여나 닳아버릴까 한 회 한 회 아껴가며 보던 돌배 작가의 < 계룡선녀전 > 이 지난 달 완결되었다 . 1년간의 연재기간동안 훈훈하고 먹먹한 가슴으로 때론 미소지으며 함께했다 . 1월즈음이었던가 , 완결편까지 모두 선공개 된 것을 확인 한 뒤 유료 결제로 후다닥 달려주고 다시 첫 편부터 완결 편까지 정주행 . 그리고 마침내 돌배 작가의 그림 속 , 이야기 속 [ 선녀다방 ] 과 선옥남 선녀 , 정교수 , 김김이 , 점순 점돌이와의 추억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자 오랜만에 커피전용으로 제작 된 소형 맷돌을 꺼내들었다 . 어우 무거워 ... !!
가장 좋아하는 커피 . 계룡산 . 전래동화 . 이 세가지를 모두 충족시켜 준 돌배 작가의 < 계룡선녀전 > . 인간계에 잠시 내려와 계룡산에서 목욕하던 중 날개옷을 잃어버린 699살의 선옥남 선녀가 커피의 신 칼디에게 사사받은 바리스타 기술을 살려 계룡산에 [ 선녀다방 ] 을 열었다 . 자신만의 '부렌딩' 커피를 정성껏 달여 손님에게 내어주며 이야기는 시작 된다 .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할머니로 보이지만 함께 선계에 있었던 선인들의 환생인 정교수와 김김이에겐 젊고 아름다운 선녀의 모습이 투영되고 , 그녀의 커피를 마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효험을 준다 . 선옥남 선녀가 준비한 커피 메뉴는 아래의 다섯가지 . 정감있고 아름다운 그림은 보너스 .
[ 선녀다방 차림표 ] - 부렌딩 -
사슴의 눈물 (카라멜, 알몬드의 맛과 너티함)
참새의 아침식사 (깊은 바디감, 묵직한 고소함)
안돼요 공주님 (화사한 꽃향기, 발랄한 맛)
달빛 엘레강스 (독특한 향미, 고소하고 달콤한 향)
검은물 (다크한 맛)
실로 계룡산은 묘-한 기세를 느끼게 하는 덕분에 동학사, 신원사, 갑사, 마곡사 등 삼국시대부터 유래한 오래된 절들이 위치하고 있다 . 그 중에서도 나는 갑사를 좋아하는데 , 산 속 아늑한 곳에 요새처럼 딱 들어앉아 영험한 기운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 더불어 갑사 수정봉 입구에 자리한 지인의 가족식당(무려 한식대첩2의 우승팀)에 방문하기 위해서도 계룡산은 갑사 쪽을 즐겨간다 . 요란스럽지 않고 고즈넉한 유원지도 옛스러운 모습이 남아있고 , 특히 눈내린 겨울의 운치가 그야말로 갑인 곳이다 . 갈때 마다 " 치킨 앤 드래곤 카페 (계룡카페) " 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 계룡선녀전 > 이후에는 눈 앞의 계곡과 산자락을 보며 선옥남 선녀와 점순이 , 점돌이 , 신선트리오 , 몽문스님이 저기 어디쯤 있겠거니...하는 상상을 하며 쓱- 미소짓게 됐다 .
<계룡선녀전 >의 굳이 아쉬운 장면이라면 500년간 커피를 수행하며 잘 달인 커피를 사발이나 표주박에 버드나무 잎까지 띄워 손님에게 내어주는 선옥남 선녀가 말코닉이나 디팅 같은 속세의 킹왕짱 그라인더를 다방안에 들여놨다는 것 ! (물론 절구로 빻는 장면이 있지만) 우리집 커피맷돌을 [ 선녀다방 ] 에 살폿 놔드리고 싶었다 .
생각하다보니 어느 덧 베란다에서 커피맷돌을 낑낑거리며 꺼내고 있는 나 . 그래 , 완결 축하와 함께 작품을 떠나보내며 [ 선녀다방 ] 의 부렌딩을 재현해보자 ! " 사슴의 눈물 " 로 도전 . 과테말라와 콜롬비아를 7:3 비율로 부렌딩하고 커피맷돌에 분쇄 . 그르릉~스르릉~ 위 아래 곱돌이 서로 맞물리며 기분 좋게 갈아진다 . 맷돌 분쇄 특성상 입자가 굵은 것도 있고 가는 것도 있어서 추출도구는 프렌치 프레스로 정했다 . 15gram 의 커피와 200ml의 물을 붓고 나무막대로 저어준 뒤 뚜껑을 덮어 3분 후 손잡이를 누른다 . 커피오일까지 함께 추출되는 프렌치 프레스 특유의 부드러운 목넘김을 타고 한 모금 . 과연 ' 카라멜, 알몬드의 맛과 너티함 ' 스러운 고소하고 진한 견과류 풍미가 입안 가득찬다 . 크으 - 마지막 한 방울 까지 " 사슴의 눈물 " 만끽 , 맛있다 !
내일은 에티오피아 하라 내츄럴과 케냐 아이히더를 부렌딩 해 [ 선녀다방 ] 스테디셀러 " 안돼요 공주님 " 을 재현 해봐야지 :) ' 두둥 ! ' 의 효험이 있으려나 ~
♪ Flo Morrissey & Matthew White - Look At What The Light Did Now
글/사진 - Jumi Kim https://brunch.co.kr/@zzu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