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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쇼 Mar 19. 2018

100년 커피와 봄의 기억

오사카 - 히라오카 커피점

새벽 , 머리 너머 창문에서부터 '쏴아아아- 덜컹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봄 비가 쏟아졌다 .

고민이 많아진 요즘은 깊게 잠들지 못하기에 "아... 드디어 봄비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후다닥 일어나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 전 날 이른 아침부터 앞 마당을 부수고 정화조로 이어지는 하수관 공사를 했기에 양생중인 시멘트 위에 우산을 씌워야만 했다 . 진작에 고양이 발자국이 송송 찍혀버렸지만 ,


비 오는 날을 가장 좋아했으나 교통사고 이후 공기중에 물기가 많아지면 몸이 아파진다 . 

이리 데굴 , 저리 데굴 전기장판 온도를 조금 올려 다시 데굴 , 핸드폰 만지작 거리며 데굴 , 끝내 이불 밖으로 기어나왔다 . 눈은 피곤해 자고 싶지만 잠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


♪ Call And Response - Rollerskate https://youtu.be/K_MUOIVNsfw


봄 비와 함께 마실 새벽녘 커피는 뭐로 할까 . 

잠을 쫓아야하니 제법 터프하고 강하게 볶아 둔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를 골랐다 .

물을 끓이고 각종 브루잉 도구들을 꺼내자 문득 [히라오카 커피점]이 떠올렸다 .

강배전 과테말라 원두를 베이스로한 오리지널 블랜드를 탕약짜듯 면보에 걸러주던 커피집 .

1921년 개점해 지금까지 100주년을 목전에 두고 3대째 운영해 오고 있는 곳 .

- 오사카 100년 커피 [히라오카 커피점]의 도넛과 오리지날 블렌드 -


오사카 그리고 간사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 된 커피상점 중 하나인 히라오카 커피점을 찾아가던 날도 아침 일찍 부슬부슬 비가 왔다 . 낮게 깔린 커피 향이 골목 어귀 은은하게 퍼졌다 . " 아, 다 왔구나 ! "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대의 흐름이 바뀐다 . 옛스러워 보이는 나무 소재들을 이용해 인테리어를 한게 아니라 개점 때 부터 이렇게 저렇게 보수를 해오며 지켜낸 공간이기에 남은 것과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 누가 그랬더라 < 손님이 가장 훌륭한 인테리어 > 라고 , 이 곳을 찾는 백발의 모던보이 모던걸들 즉 ,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여유로움도 시간여행을 부추겼다 . 벽면은 갤러리 형태로 운영하는데 이 날은 가면전시중 .


- [히라오카 커피점]과 마스터 '키요시'상


다치(Bar)에 자리잡고 오리지날 블랜드와 시그니쳐 도넛을 함께 주문했다 .  뜨거운 물 200ml에 곱게 간 원두 12g을 계량하고 3대째 사용중인 냄비에 넣어 짧은 시간 강하게 끓여낸다 . 여기까진 터키의 이브릭과 유사한 상태 // 이어 촘촘한 면보를 이용해 범랑 포트에 옮겨 붓는다 . 이건 융드립 여과방식 // 마지막으로 면보에 남은 커피들을 쥐어짜며 액기스를 추출한다 . 그 옛날 엄마들이 탕약짜듯이 .

이윽고 180ml 정도의 커피와 노오란 도넛이 내 앞에 놓여진다 . 진한 향미를 만끽 한 뒤 한 모금 , 입 안에서 부드러운 커피의 감촉을 느낀다 . 단맛이 없어 조금 퍽퍽한 질감의 도넛마저 고소한 풍미 증폭 !

 - [히라오카 커피점] 특유의 보일링 추출법과 3대째 사용중인 추출장비들 -



문득 벽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 

역시 3대째 물려 받은거겠지 . 키요시상께 여줘보려는 찰나 " 오잉 , 시계가 멈췄네요 ? " 말하니 고맙다며 얼른 시계에게 다가가 태엽감고 밥주시는 모습도 정겨웠다 . 일본어를 못하는 커피 매니아들도 성지처럼 방문하는 곳이라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도 이것 저것 알려주신다 . 영어 메뉴도 준비되어있고 , 키요시상이 영어를 잘하신다 . 나야 물론 영잘못이라 배워둔 일본어로 설명을 들었고 .


낡은 시간만큼 낡은 추억들이 가득 쌓여있는 곳 .

100주년 되는 해에 또 찾아가야지 .



平岡珈琲店 / HIRAOKA KOHITEN

3 Chome-6-11 Kawaramachi, Chuo, Osaka

https://goo.gl/maps/PJ5xuDjQTJ62


글/사진 ㅣJumi Kim https://brunch.co.kr/@zzu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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