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신랑과 함께 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내 곁을 지켜온 가족이 있다. 검은 털을 가진 푸들 수컷, 이름은 아끼. 둘 다 바쁘게 일하던 시절, 혼자 남겨질 이끼가 외로울까 봐 그해 한 달 차이로 태어난 갈색 털의 암컷 푸들 아리를 데려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함께였다.
우리 집은 대가족이다. 연애 시절부터 함께였고, 신혼집에서도 같이 들어왔으며, 두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까지 아끼와 아리는 늘 곁에 있었다. 우리 아들들보다 먼저 가족이 된 노부부. 그렇게 여섯 식구가 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시간은 사람만 늙게 하지 않는다. 내 곁을 지켜주던 그 작은 푸들 부부도 이제는 노부부가 되었다.
아끼는 여전히 팔팔하다. 이빨도 튼튼하고, 점프도 잘하고, 아침마다 기지개를 켜고 내 모습을 보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꼭 아침 문안 인사를 건네는 어르신 같다. 요리할 때면 하이에나처럼 내 발밑을 맴돌며 무언가 떨어지길 기다린다. 상추도, 당근도, 좋아하는 입맛도 다양하고 영악할 정도로 똑똑한 녀석이다.
하지만 아리는 다르다. 지고지순한 단순하다 못해 멍청할 정도로 순박한 성격. 아리는 나밖에 모른다.
아리는 그렇게 나와 두 아들 모두 다 지켜줬다. 아리는 단 한 번도 두 아들의 간식에 입을 댄 적 없었다. 주기 전까지는. 심지어 자기 남편인 아끼 까지도 지켰다.
산책할 때 자기보다 몸집이 큰 개에게 졸아서 납작 엎드리고 있을 때 아리가 가서 왈왈 짖으며 말이다. 집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우리 집을 철저히 지켰다. 아린 언제나 보초병처럼, 하염없이... 지고지순하게 우리 가족을 지켰다. 나와 떨어지면 분리불안을 심하게 느껴 외출 후 돌아오면 집이 엉망이 되어 있을 때도 많았다.
나도, 아리도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다.
아리는 두 번의 출산을 했다. 그 순간마다 나는 곁에서 산파가 되었고, 엄마가 되어 그녀를 지켰다. 이후 아끼는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아이들은 지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두 번의 출산과 육아가 그녀를 더 빨리 늙게 만든 걸까.
같은 해 태어났지만, 아리는 먼저 눈이 흐려졌고, 이빨도 하나 둘 빠졌고, 지금은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점점 탁해지던 눈은 결국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나를 찾아다닌다. 내 곁에 와서 조용히 기대 잠이 든다. 살금살금 집안을 돌아다니다 벽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물도 잘 찾아 마시고 밥도 잘 먹는다. 화장실도 혼자 잘 다닌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
15년의 세월이 만든 노부부의 모습이 애틋하기만 하다.
우리 부부만 늙어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우리보다 더 노부부가 되어 있는 푸들부부를 보며 마음이 시리다.
특히 아리를 바라볼 땐 더 그렇다.
한 달 차이로 태어났을 뿐인데, 이렇게 다르게 늙어갈 수 있다니. 그녀를 어루만지며 예뻐해 줄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같은 여자로서, 아이를 낳아본 어미로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인간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남성호르몬이 증가해 체력이 유지된다고 한다. 강아지는 반대일까? 호르몬이 점점 빠져나가며 더 힘들어지는 걸까?
가끔은 수컷 아끼가 얄밉다. 평소엔 아리 근처만 가도 으르렁대다가, 아리의 발정기만 되면 낑낑거리며 온갖 아양을 부린다. 중성화를 했음에도 말이다. 자신의 목표는 꼭 이루고야 마는 근성으로 똘똘 뭉친 수컷. 그런 아끼가 버거워 보이지만, 아린 또 지고지순하게 내어준다. 그럴 땐 " 그만 좀 괴롭혀!" 하며 아끼를 혼내고 싶어진다.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리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아리야. 오래오래 같이 살자. 지금 많이 힘들겠지만, 네가 집 안 곳곳에서 나를 찾아 헤매며 지켜주려는 거 알아. 나도 항상 널 지켜줄게."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목이 멘다.
손바닥만 했던 강아지가 이렇게 늙어버리다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사람이나 동물이나, 늙어가며 조금씩 삐걱거리는 몸으로 함께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버텨낸다.
오늘도 다섯 식구를 돌보며 분주하게 하루를 산다.
하지만 그 다섯 생명체가 내게 주는 사랑은 언제나 충만하다.
내가 엄마처럼 돌보아왔던 순간들. 그런데 어느새 자식이 나보다 먼저 늙어버렸다.
세월이 만든 역전 현장 앞에서 나는 자주 멈칫하게 된다.
참 이상하다. 사랑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곁에 있어 행복한데, 언젠가 떠날 것을 알기에 오늘이 더 슬프다.
그래도 오늘, 나는 이 늙은 노부부를 꼭 안아본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우리는 오늘처럼, 이대로 함께 늙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