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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Dec 23. 2023

미래는 예측 불가능 한 것

연말이 어느새 다시 찾아왔구나. 부동산 펀드 매니저로 일한지도 이제 4년이 다 되어간다. 정확히는 PM (Portfolio Management , 또는 Fund Management)팀의 헤드가 나의 매니저이고, 바로 그 아래에서 서포트 하는 일, 그리고 간혹 PM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 그를 대신하는 일이 현재 나의 역할이다. 대부분 이렇게 몇 년 정도 PM을 보조하는 업무를 하다가 메인 PM으로 자리를 잡으면 회사 업무의 주요 결정을 담당하는 책임이 막중한 직책이 된다.


4년은 참 길고도 짧은 시간이다. 처음과 비교해보면 많은 것들을 배웠고 엄청난 성장이 있었지만, 여전히 일을 떠올리면 자신감 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함이 훨씬 더 크게 찾아온다. 아마도 배움 곡선(Learning Curve) 의 시작에서 멀지 않은, 아마 가장 저점 어딘가에 있는가 보다.


초반의 자신감이 지나가고 고속하강한 저기 빨간점 어딘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먼저 깨게 된 나만의 고정관념은, 이 펀드매니저는 자신만의 판단이나 감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영어로는 크리스탈 볼(crystal ball)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마치 마법사가 수정구슬을 앞에 놓고 미래를 예언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표현할 때 이렇게 이야기 한다. 펀드매니저는 크리스탈 볼을 앞에 놓아두고 미래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마법사의 수정구슬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가 어느날 다가와, 소유하고 있는 자산에 대해 이것을 지금 팔아야 할지, 계속 들고 있어야 할 지를 물어왔다. 플로리다 남부에 위치한 300호 짜리 아파트였다. 나는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펀드매니저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팔아야 합니다" 또는 "계속 들고 있으세요" 같은 신속한 결단을 내릴 거라고만 막연히 예상해왔다.


하지만 보통은 다음과 같은 대화가 펼쳐진다.


"아 네, 그럼 지금 시장 상황이 어떤지 저희 내부 다른 팀과 상의하겠습니다."

또는 "저희와 함께 일하는 파트너사의 의견이 같이 필요하니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라는 답으로 이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보가 종합되면, "이러이러한 시장 상황과 조건으로 지금은 그대로 보유하는게 좋겠습니다" 라는 숙고를 거친 조언이 나간다. 혼자서 결정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고, 언제나 팀워크가 동원된다. 아무리 잘 알고 경험이 많은 사람도 그렇게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데 그 결정은 꽤 많이 틀린다. 아니 거의 모든 상황에서 다 틀린다고 하는게 차라리 맞다. 큰 관점에서 살 지 팔지에 대한 결정은 맞을 수 있다고 쳐도 (그 조차도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지만), 그 결정을 위해 계산에 넣은 모든 가정들 - 월세 증가율, 예상 공실률 등 - 을 맞추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틀린다고 해서 또 딱히 펀드 매니저가 떠안을 피해도 없다.*


결국 미래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장 다음 달에 어떤 아파트에서 수익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도, 물가 상승, 천재지변 등 너무나 많은 미래에 대한 가정이 들어간다. 이걸 알아맞추는 것은 마치...답을 알 수 없는 객관식 5지선다형 시험문제에서 아닌 것 같은 두 항목은 제거하고, 나머지 세 개 중에 그나마 적절한 걸 고르는 확률 게임을 하는 느낌? 게다가 나도 나의 삶이 있으니 제 시간 퇴근을 위해 그 가정들을 완벽하게 맞추는데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객관식 문제. 정답 같아 보이는 선택지 중에 가장 그럴싸한 답안을 고르는 과정.


그러니 아무리 출중한 사람들이라 해도, 아무리 기관이 제공해주는 각종 최신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 누구도 미래는 점쟁이처럼 알 수 없다는 깨달음이 지난 4년에 걸쳐 피부로 와닿은 나의 가장 큰 배움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것을 활용한 '최선의 결정'뿐이다. 그래서 최선의 결정을 위해서 최소한으로 갖춰야 하는 자질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협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모습이다. 나의 자아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모른다고 하지 않는 것이, 다 할 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는 것이, 앞으로 가장 뛰어넘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임을 깨닫는다.


미래는 알 수 없고 혼자서는 더더욱 할 수 없다. 같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함께 해주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래서 감사로 마무리.


*누군가에게 내 돈을 굴려달라고 맡길 때 이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결국은 클라이언트의 돈이지 펀드매니저의 것은 아니므로 손실은 오로지 본인만이 떠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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