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황해볼게요 Sep 05. 2024

포기한다는 건

Day23 Camino de Santiago

 아침으로 달걀을 삶고 바게트를 구웠다. 어제 사둔 치즈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우린 참 잘 챙겨 먹는다며 스스로 기특해했다.


 오늘은 카페 콘 레체 대신 오렌지쥬스를 마셨다. 아침을 꽤나 느끼하게 먹고서 리프레시할 것이 필요했다.


 종종 마트에 들러 야채믹스나 양상추를 사서 걸으며 먹곤 한다. 누난 내게 포카칩 먹듯이 먹는다고 했다. 그 뒤로 우린 이걸 포카칩이라 부른다. 오늘도 한 봉 클리어했다.


 길을 걷다가 꽤 오래되어 보이는 작고 이쁜 자동차를 마주쳤다. 얼른 핸드폰을 들어 올렸는데 이미 늦은 탓에 뒷모습만 남겼다. 한국에선 매니아들이 어렵게 구해 애지중지하며 탈 것만 같은, 길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올드카를 자주 마주치는 것도 내겐 여행의 큰 재미이다.


 오늘도 자몽을 까먹으며 걸었다. 원래도 좋아하는 자몽을 걸으면서 더울 때 먹으니 상큼한 게 영 맛이 좋다. 속껍질까지 다 까내고 한 입씩 나눠 먹으니 자몽 3개는 금방이다. 내일은 5 자몽 해야지.


 마을에 있는 슈퍼에 들렀다. 한국말로 크게 인사해 주시는 주인장이 있었다. 그의 모습이 눈에 담기는 매 순간에 그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소년미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그는 순수한 미소를 지어내는 사람이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서 큰 만족감을 갖는 것 같은 사람을 꽤 자주 마주한다. 그가 그러했다.


 저녁으로 소 귀요리와 하몽파이, 라면과 조미된 밥, 바게트와 맥주를 사들고 앉았다. 처음 접하는 소의 귀 요리는 꽤나 신기했다. 한국에서 소머리국밥을 먹으면 종종 들어있는 꽤나 두꺼운 껍데기 부분을 파프리카 파우더 베이스의 양념에 조리한 것 같았다. 기름지고 고소했다. 맛이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육류의 껍데기 식감이 좋았다. 하몽파이는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포기한 음식이다. 한 입 먹는 순간에 강렬한 꼬릿함이 입안을 채웠다. 호불호가 강하고 하드코어한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검붉은 하몽과 강하게 숙성된 치즈가 준 그 맛은 즐길 수 있는 무엇이 아니었다. 다 먹지 못하고 버려야 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23일차 끝.

이전 22화 자주 웃어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