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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Sep 06. 2024

요샌 좋은 것들에 반응을 크게 한다

Day25 Camino de Santiago

 아침으로 사과와 계란찜을 먹었다. 테이블에 앉아 입엔 무얼 씹으면서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건 그 뒤로 눈에 담기는 풍경이 퍽 인상적이어서 다. 매일 다른 곳에서 일출을 보며 매일 감탄하곤 한다. 오늘의 그것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높은 곳에 앉아서 저 멀리 지평선 뒤로 힘차게 떠오르는 붉은 구가 주는 힘이 좋았다.


 오늘의 길을 나서며 마주한 풍경에 입꼬리를 올렸다. 한국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건축물들이 주는 낯설고 아름다운 느낌에 여행 떠나왔음을 종종 느끼며 미소 짓는다. 그것이 아름다워 보임에는 청명한 하늘도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여행의 절반은 날씨다. 맑은 날엔 특별한 것 없이도 행복감을 느낀다. 요샌 특별한 것까지 곁들여지니 하루하루가 퍽 인상적이다.


 종종 표지판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 보곤 했는데 오늘은 소 그림에 눈이 붙어있었다. 앞에 걷고 있던 순례자의 등에는 인형이 매달려있었다. 요샌 좋은 것들에 반응을 크게 한다. 부정적인 것에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일부러 그런다. 소소한 눈요기에 귀엽다며 크게 웃어 보이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순례길은 많은 순간 아름답다. 멋진 풍경을 자주 마주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적응하지 않고 당연하다 여기지 않으며 감탄해 보인다. 오늘의 풍경도 그러했다.


 오늘도 카페 콘 레체를 마시러 카페에 들렀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카페 콘 레체는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은 게 아니었다. 아메리카노만큼 물 양을 많이 잡고서 우유를 섞어냈다. 우리가 지금까지 표현하던 물탄 맛은 실제로 물을 많이 타서 그런 거란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지평선에 가까운, 그 끝이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도로를 걸었다. 시야가 탁 트인 게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날씨가 한몫했다. 빵과 초리조가 그 길을 함께했다. 해가 점점 높이 치솟으며 땅을 달궈낼 때쯤 가방에서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어제 미리 이온음료를 얼려 들고 왔다. 아직 채 녹지 않은 큰 조각을 부숴서 슬러시처럼 만들어 마셨다. 특별할 것 없는 순례길의 어느 하루였다. 자연스러운 그 순간에 행복을 가득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어느 마을의 건축물의 꼭대기 언저리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새집을 발견했다. 저것은 어찌 만들어졌으며 왜 하필 저곳에 자리 잡았고 내 눈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는가 생각했다. 내가 답을 알아낼 턱은 없었지만, 저것이 어느 생명체의 보금자리라면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한번쯤 상상해 보는 것이 즐거웠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서 가방에 있던 모든 옷을 꺼내어 빨랫줄에 널었다. 햇살이 좋았다. 우리는 그 앞의 테이블에 앉아 자몽을 까먹었다. 오늘은 5자몽 하자며 구매했는데 이온음료 덕인지 걷는 동안 자몽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덕분에 오늘의 순례길이 끝나고서 여유를 부려볼 수 있었다. 쨍한 볕 가운데서 그늘아래 앉아 과일 먹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그 순간에 웃음 지어 보이는 내가 좋았다.


 저녁으론 어제 남은 소스로 파스타를 만들고 소시지를 구웠다. 파스타에는 수란을, 소시지에는 당근을 곁들였다. 식사에는 와인을 곁들인다. 순례길을 걸으며 와인을 많이 마신다. 알베르게에서 식사할 때면 늘 와인이 함께 테이블에 오른다. 꼭 제공되는 식사를 하는 게 아니더라도 마트에서 2-3유로쯤 하는 와인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대부분 괜찮은 맛을 낸다. 와인을 마실 때 우리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같은 와인은 다시 마시지 않는 거다. 워낙 방대한 제품이 있고 흥미를 끄는 것들도 많기에 새로운 와인을 먹어보고 맛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이 재미있다.


25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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