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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Sep 08. 2024

그 곳에 있어서 더 멋있는 사람

Day26 Camino de Santiago

 카페 콘 레체로 하루를 시작한다. 스페인에서 보기 드물게 메뉴판이 있는 카페였다. 들어서는 발걸음과 함께 코를 스치는 향기가 좋았다. 어느 허브라고 했는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같은 마을에 있는 슈퍼에 들렀다.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작은 용량으로 가격표까지 하나씩 모두 붙여 판매하고 있었다. 이 사장님 일 잘하신다며 감탄했다.


 오르막을 올라서 어느 스팟에 도착했다. 그곳을 지나는 이들 중 내가 본 사람들은 모두 사진을 한 장씩 남기고 갔다. 중국에서 오신, 가방에 두 인형을 매달고 다니시던 분이 사진 찍어주시겠다고 하여 우리도 사진을 남겼다. 내가 본 중국인 중 가장 밝고 친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고도가 높아졌다가 내리막을 내려가기 시작하며 풍경이 눈에 담겼다. 그 거리가 가늠되지 않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산의 능선이 눈에 담길 때 느껴지는 개방감 내지 해방감을 좋아한다. 매일 달라지는 풍경 앞에서 매일 감탄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지 싶다. 이곳을 걷기로 마음먹은 내게 오늘도 기특하다고 말해준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몽을 먹으며 걸었다. 순례길 초반에는 복숭아를 주로 먹었는데 요샌 자몽에 빠져있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구매한 자몽이라도 저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중요한 포인트는 당도와 산미와 향이다. 너무 단 것은 많이 먹기에 부담스럽고,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산미가 강조되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향이 좋은 개체를 만나면 그 두 가지는 중요해지지 않는다. 향으로 입과 코를 가득 매워주는 그것을 만나면 일부러 오래 머금고 음미해 본다.


오늘 걷는 내내 탁 트인 풍경이 이어졌다. 푸른빛 하늘 아래 쨍한 볕을 맞으며 내내 미소를 머금고 걸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지평선이 시야에 들어오는 일이 잦아서일 수도 있고 하늘이 이뻐서일 수도 있고 걷는 동안 느린 속도감에 다른 재미를 찾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다만 그 이유가 중요치 않은 건 하늘이 늘 아름다워서 일테다. 다양한 모습을 한 구름을 보는 걸 좋아한다. 자주 동물의 이미지를 덧씌워보곤 한다. 더 귀여워 보이는 효과가 있다.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 같아 지나는 마을의 카페에 들렀다. 처음 보는 케이크가 있어 하나 주문하고 에스프레소도 곁들였다. 배로 만든 케이크이라고 했는데 특별하지는 않았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남은 거리를 알리는 표식을 자주 발견한다. 매일매일 눈에 띄게 거리가 줄어들수록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이 길이 너무 마음에 든 탓인가 보다.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바로 향했다. 원래는 3시쯤 배가 고파서 들렀는데 주방을 7시에 여신 다고 하셔서 기다리다 다시 향했다. 바로 향하는 길을 알리는 표식을 직접 그리신 것 같았다. 바에 도착하니 한창 오픈준비를 하고 계셨다. 청소를 하시고 메뉴를 분필로 작성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손글씨 메뉴라 그런지 더 애정이 갔다. 더블버튼 셰프복을 입으신 셰프님이 무언갈 베끼는 과정도 없이 막힘없이 적어내시는 모습을 보며 어딘가 더 믿음이 갔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스테이크와 새우를 주문했다. 테이블 공간을 청소하시고서 아직 마르기 전이라 잠시 기다리는 동안 음식을 준비하시는 모습을 구경했다. 냉장고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채소를 꺼내 필요한 만큼만 뜯어내고 썰어내고서 다시 넣으시는 모습을 보며 사소한 것까지 즉석에서 정성스레 하시는구나 생각했다.


 처음으로 나온 건 스테이크, 채끝이었고 블루레어로 익혀져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겉면이 바삭하게 완벽한 시어링을 만들어내고서도 단면엔 속살로 익어 들어간 시어링의 두께가 얇았다. 굽기 조절을 완벽하게 하셨다. 맛에서 포인트는 시어링의 식감과 지방이 적은 살코기의 육향이 좋았고 위에 뿌려주신 입자가 굵은소금의 짠맛이 늦게서 녹아들 때의 감칠맛이 좋았다.

 새우는 별다른 양념 없이 구워져서 테이블에 올랐다. 냉동새우를 사용하시는 것 같았는데 굽기가 완벽했다. 퍽퍽한 식감 하나 없이 탱글함을 잘 살렸고 새우에도 겉면에 입자가 큰 소금을 뿌려주신 게 맛의 디테일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선도가 좋지 않은 새우를 먹으면 내장에서 불쾌한 향이 나기도 하는데 오늘은 한 마리도 빠짐없이 내장을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두 가지 메뉴를 비워내고서 양이 조금 부족했다. 두 가지 메뉴가 모두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기에 하나 더 주문해 보기로 했다. 고기 메뉴가 좋을 것 같아서 치킨윙을 골랐다. 셰프님이 어디 가시려 했던 건지 옷을 챙겨 입고 나오시다가 우리의 주문을 듣고서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겉옷을 화려하게 벗어내셨다. 웃음 지었다. 멋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리 멋있는 셰프를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치킨은 라이드로 튀겨져서 나왔다. 염지가 잘 되어있는 닭인 것 같았는데 독특하게 치토스의 향이 났다. 바삭하게 잘 튀겨낸 치킨은 맛없을 수 없었다. 얼마 만에 먹는 프라이드치킨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며 맛있게 먹었다.


 계산하고 나올 때, 셰프님이 얼른 달려가시더니 아이스크림 두 개를 주셨다. 감탄했다. 완벽한 사람인 것 같았다. 알베르게로 향하며 어떻게 저런 사람이 이리 작은 마을에서 일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을까 대화하며 걸었다. 누나는 이곳에 있기에 저 사람이 더 멋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과 함께하는 일몰까지 완벽했다.


 26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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