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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Sep 09. 2024

카메라보다는 눈에

Day27 Camino de Santiago

 아침 일찍이 알베르게를 나서며 숙소 문을 열자마자 헉하고 감탄했다. 하늘에 무수한 별이 그야말로 쏟아지고 있었다. 사진에 담아보려 핸드폰을 들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내려놓는다. 폰에 담기보다 눈에 담는 게 훨씬 아름다웠다. 사진은 그저 내 기억의 유효기간을 조금 늘려주기 위한 것에 불과함을 요새 자주 상기한다.


 구름 속을 걸었다. 낯선 감각이었다. 눈썹이고 머리칼이고 작은 물방울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숨을 쉬면 미세한 물방울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시야는 흐려졌다. 신기하고 낯설었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선 걸으며 먹었다. 바게트를 거의 매일 먹었던 터라 오늘은 새로운 빵을 사보았다. 겉면은 딱딱하고 곡물향이 강하게 났다. 속은 쫀득하고 신맛이 났다. 비주얼을 보고서 느낌이 좋아 골라본 빵인데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어김없이 나의 포카칩, 씻어 포장된 채소를 꺼내 들었다. 오늘은 크래미 같은 게살도 함께했다.


 길을 알리는 표식이 금색 금속으로 되어있었다. 처음 보는 형태의 것이었는데 배경이 되는 돌벽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독특하고 이뻐서 사진을 남겨보았다. 작은 것에 긍정을 표해보길 요새 즐기곤 한다. 인생이라는 표현을 들이밀기에 거창하지만, 하루하루가 더 아름다워진다.


 카페에 들러 늘 그렇듯 카페 콘 레체를 주문했다. 커피 두 잔을 먼저 가져다주시고서 작은 접시에 담긴 토르티야 보카디요를 두 개 주셨다. 물음표를 가득 띄우며 직원분께 여쭤보니 무료로 주시는 거라 했다. 커피의 가격이 다른 카페보다 더 비싼 것도 아니었다. 그 마을에서 유독 그 카페에만 사람이 많았다. 그럴만했다.


 높은기둥 위에 자리 잡은 커다란 새집이 있었다. 요새 종종 뜬금없는 곳에 위치한 새집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에선 저런 새집을 본 적이 있나 생각해 보았다. 내 눈에 담기기 전에 진작 없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독 그것이 더 소중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우연히 마주한 마트에 들러 늘 자기 몫을 훌륭히 하는 피칸파이를 담고 며칠 전부터 마셔보고 싶었던 100% 오렌지주스를 샀다. 피칸파이는 늘 그렇듯 너무 맛있었다. 디저트류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항상 맛있게 먹는다. 학창 시절에 급식으로 피칸파이가 나오면 친해진 급식조리사 분들께서 남은 걸 몇 개 더 챙겨주시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걸 스페인에서 자주 먹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겠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삶이 기대된다. 기대할 수 있는 삶을 살아내 주는 스스로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저녁으로는 삶은 문어와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조리해 먹었다. 며칠 전에 조리해 먹고서 맛있기에 같은 회사의 다른 제품들을 사 와보았다. 다만 그때는 팬이었고, 오늘은 전자레인지다.

 삶은 문어에 올리브오일을 듬뿍 붓고 빵과 함께 먹었다. 마트에서 삶아진 문어를 저리 먹기 좋게 잘라서 판매하니 좋았다.

 냉동식품은 전자레인지에 조리하면서부터 무언가 잘못되었음이 느껴졌다. 사실 팬에 조리하라고 되어있던 것들이었는데 괜찮겠지 하며 전자레인지에 조리했더니 물이 잔뜩 생겨버렸다. 물을 중간중간 버리며 조리했지만 물컹한 식감과 향이 아쉬웠다.

 빠에야도 물이 꽤 생기긴 했지만 가장 맛있었다. 먹물빠에야였는데 특별한 맛이나 향이 있지는 않았다. 누나와 꽤 고심한 끝에 사들고 온 멜론을 다른 순례자들과 나누어먹었다. 큰 과일을 사면서도 나누어먹으면 되지 하며 살 수 있어서 좋았다.


27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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