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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트라우마도 이겨낸다

2장. 엄마로, 어른으로 자라나는 중입니다

by wonderfulharu

울집 둘째는 얌전한 아이다. 조용하고 순한 성격이라 사고와는 거리가 멀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아이가 더 크게 다친다더니 정말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나는 학교 정문에서 하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탈진 길 아래에서 마스크를 쓴 둘째가 나를 발견했다. 반가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팔을 벌리듯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발을 헛디뎌 그대로 넘어졌다.


“아이쿠, 왜 뛰어. 천천히 오지.” 웃으며 다가갔지만, 아이의 턱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피를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생각보다 크게 다친 듯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수건을 꺼내상처를 눌렀고, 아이를 달래며 집으로 데려왔다. 마스크 철사에 긁힌 듯한 상처는 쉽게 멈추지 않았고, 결국 119에 전화를걸었다. 구급대원의 지시에 따라 계속 지혈을 하며 구급차를 기다렸다.




구급차는 금방 도착했고, 우리는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였지만 병원은 한산했다. 코로나 간이 검사를 마치고 바로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의사는 상처가 깊다며 안쪽과 겉 피부를 각각 몇 바늘씩 꿰매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단단히 붙잡고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 겁에 질린 아이에게 “금방 끝나, 절대 움직이면 안 돼”라고 말하며 아이의 머리를 꼭 쥐었다.


나는 평소에 바늘과 칼을 무서워한다. 어릴적 트라우마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긴장을 하면 손이 떨리고, 목소리도 흔들린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 감정 없이 아이만 바라봤다. 아이 치료가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처치가 끝난 후 남편이 큰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왔다.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을 나섰을 때, 이미 7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저녁을 차릴 기운도 없었다. 이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챙기려는데,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는 순간 눈물이 났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정신없이 달려온 하루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아이 앞에서는 꾹 참았던 감정이, 혼자 있는 그 순간에야 터져나왔다.




그날 이후로도 아이들은 크고 작은 사고들을 겪었고, 나는 엄마로서 또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무섭고 떨리는 순간에도 손이 먼저 움직이고, 겁났던 마음은 안도감과 함께 나중에 찾아왔다. 다행히 엄마는 위기 속에서 강해진다고 무서움보다 아이가 먼저고, 떨림보다 지켜야 할 마음이 더 앞선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씩 더 담담해졌고 단단해졌다.


그래도 나는 바란다. 이제는 아이들이 더는 다치지 않고 엄마의 단단함이 더는 시험받지 않기를. 아이가 무사히 하루를 보내주는 것, 그것만큼 고마운 일은 없다.


이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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