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핥고 있었다.
혀는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말은 혀를 지나지만, 그보다 오래 남는 건 닿지 않은 감정이다. 입 안에서 문드러진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나는 혀를 눌렀고, 눌린 자리에서 사랑은 썩기 시작했다. 썩은 사랑은 향기롭다. 물러진 복숭아처럼, 겉은 보드랍고 속은 시큼하다. 나는 그것을 매일 입 안에 넣었다. 기억이 아니었다. 의식도 아니었다. 습관이었고 중독이었다.
나는 그를 씹지 않았다. 핥았다. 깨물지 않았다. 머금었다.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포개었다. 고이는 것은 감정의 방식이다. 흘러내리는 것은 후회의 태도고. 그 감정은 언어보다 빠르게 혓바닥을 타고 넘어가 목구멍 어딘가에 멈추었다. 침묵이라는 이름의 어금니 아래, 나는 그를 가뒀다.
사랑은 뽑히지 않은 사랑니였다. 잇몸이 붓고, 피가 말라붙고, 통증이 나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자라났다. 잇몸 아래 고여 있는 말들은 썩은 물처럼 흐르지 못하고 부패했다. 혀끝에 닿는 순간, 그것들은 그가 되었다. 익숙하고 날카롭고, 무언가를 찌르는 방식으로 나를 열었다.
나는 그를 씹지 않기 위해 매일 핥았다. 상처 위에 핥는 행위는 회복이 아니라 증식이었다. 무언가는 자라났고, 무언가는 썩었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혀였다. 말이라는 칼날을 휘두르지 않기 위해, 나는 그저 감쌌다. 감싸는 척, 애도했다. 애도하는 척, 중독됐다.
말이 된다는 것은 이빨 사이에서 살아남는다는 뜻이고, 그는 끝내 나를 씹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삼키지도 않았다. 나는 입 안의 시간이었다. 젖어 있었고, 말라붙었고, 떼어내면 피가 났다. 감정의 껍질은 혓바닥 안에서 벗겨졌고, 나는 매일 나를 삼켰다.
치아는 흔들렸다. 감정은 썩었다. 나는 핥았다. 이 이름도 없고 끝도 없고 땡도 울리지 않는 놀이처럼. 멈춤이라는 규칙만 있는 그 게임 안에서, 나는 유일하게 움직이는 감각이었다. 혀. 그 무력한 근육으로만 감정을 다시 반복했다.
누가 시작했는지조차 모르는 멈춤. 그 멈춤 속에서 나는 매일 부패했다. 매일 무르고, 매일 감정은 식었다. 식으면서 익었고, 익으면서 상했다. 감정은 냉장고 안에서 천천히 무너지는 복숭아였다. 겉은 곱지만 속은 이미 터졌다. 아무도 먹지 않았다.
얼음은 녹고, 사랑은 썩는다. 사랑은 침묵 속에서 자라고, 입 안에서 썩는다. 나는 핥는다. 그것이 내가 배운 유일한 애도 방식이었다. 핥는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정도 아니고 용서도 아니다. 그건 남겨두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무너진 치아로 무언가를 씹었다. 아무 맛도 없는, 그러나 너무 많은 감정을 담은 무언가를. 그것이 나였다는 걸 알아버리기 전까지. 그때 나는 웃었을지도 모른다. 피 웃음, 잇몸 웃음, 썩은 웃음. 그 어떤 웃음. 이 이상한 웃음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나는 오늘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혀였으므로. 나는 감정의 젖은 바닥이었다. 나는, 혓바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