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와서 보고 가장 놀란 것은 이 앵무일 거에요. 무언가 특별한 장소나 미디어에나 나올 법한 분명한 빨강과 초록의 이 화려한 새는, 동네에도 바닷가에도 숲 속도 길가에도 정말 곳곳에서 볼 수 있어요.
처음엔 이렇게 아무 데서나 봐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TV가 출시되면 나오는 광고에 화면 가득 양 날개를 펼치고 등장하는 새 있잖아요. 자신의 색을 아니 티비 화면의 선명도를 보여주는 그 새는 금강앵무(Macaw)더라고요. 다홍색이 가득해서 다홍앵무와 같은 새라 생각했어요. (붉은색이 강렬해서 그렇지 얼굴색부터 다르더라고요.)
워낙 다홍색이라 제가 다홍앵무야-라고 부르지만 호주 킹 패롯이고 패롯 Parrot 그러니까 앵무새는 위의 금강앵무가 아니어도 그 색색이 특별하며 다양함을 알게 되었어요. 얼굴색이며 몸의 색 깃털의 색과 그런 색들의 조화, 제 기억에 아버지는 그 특별하고 다양한 색들에 감탄하며 먼 곳으로도 새를 구경하러 가곤 하셨죠.
그런 '새 구경'의 장소로 청계천 새 거리도 있지만 제게는 대전역 앞 새집 아저씨 점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2평 남짓 되는 공간에 다양한 새들이 가득 있었는데 수십 마리의 새들이 울어대는 통에 아저씨의 말도 아빠의 말도 커피 배달하는 언니의 말도 하나도 들리지 않고 그냥 멍한 상태에서 야쿠르트를 쪽쪽 빨아먹었어요. 우리 집 새방인지 대전역 새집인지 기억은 늘 겹치지만 귀를 가득 채우는 새소리는 아직도 있어요.
그 수많은 새들 중에서 회색앵무나 구관조나 십자매들이 아니고 이 다홍색 앵무를 기억해요. 유난히 곱고 눈에 띄는 빛깔만이 아닌, 무언가 이국의 그것을 만나는 기분이란. 그곳이 여기였어요. 지금 눈앞을 날아가는 저들의 호주요. 기억 속 수많은 새들의 소리에서 그들의 울음소리를 기억해 낼 수 없었는데. 바로 이거였어요.
다홍앵무가 가득 피어난 나무
처음 이 새를 길에서 보았을 땐 '우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던 녀석이다'하고 부리나케 쫓아가 사진을 찍었어요. 이럴 수가 이 새를 만나다니 신기해하며 한참을 따라가고 날아가는 뒷꽁무니도 오래도록 보았죠. 그런데 세상에! 이 새는 옆동네에도 공원에도 저 너머에도 바다에도 그리고 우리 집 나무에도 있었어요. 새벽마다 오는 그 새들, 그렇게 시끌벅적 아침을 깨우는 울음소리는 누구인가 했더니. 그 소리가 이 소리였네요.
우연히 걸어가다 올려다본 나무엔 '빨간 꽃이 한가득하네'였는데 꽃들이 푸드득 날아오르고 앵앵 날갯짓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붙어서 초록 나무속 뱅글뱅글 수 십의 마리들이 움직거리고 있는 거에요. 세상에, 이게 꽃이 아니라 새들이었네. 한 마리만 봐도 그렇게 신기했는데 이 수십의 마리가 꽃처럼 나무에 가득하다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나무 밑에 한참을 서 있었어요. 교차로인데 오죽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여기에서 저기로 한꺼번에 날아가는 새들은 마치 한 묶음의 꽃들 같았어요. 이리로 저리로 한껏-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다홍의 꽃떨기들.
대전역에서 청계천에서, 주말이면 우리는 새들을 구경하러 걸었고 그 시간이 꽃들처럼 남아 있어요. 저는 사실 새 이름도 이제야 하나하나 알아가요. 그렇게 새가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걸어 좋았답니다.
값비싼 새는 무엇하러 사느냐는 말도, 새를 왜 새장 속에 가두어야 하느냐는 이야기도 들으셨겠지만. 저는 알아요. 술도 안 드시고 별난 취미도 없고 하루도 편히 쉬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땀 흘리며 살아오신 아버지에겐, 그 새들을 보는 것이 하루의 땀을 마르게 하는 낙이었다는 걸요. 그리고 저는 호주에 오신 아버지의 얼굴에서 보았답니다. 새장 밖에서 자유로운 그네들의 날갯짓에 아버지도 가득 행복한 표정이셨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