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방학하고 브리즈번에서 조금 더 위의 '케언즈'에 갔어요. 케언즈는 작은 바닷가 도시인데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라고 세계 최대 산호초가 유명해요. 애들하고 바닷물 먹으면서 어푸어푸 스노클링도 했어요. 바다 잘 모르는 충청도 대전 아이가 출세했죠 아부지? 스노클링이야 먼바다로 나가서 하고요. 케언즈 시내에서 바다 수영을 하기엔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니 쉽지 않아요. 그래서 케언즈는 '라군'이라는 수영장이 유명해요. 바다 산책로 바로 옆에 커다랗게 만들어 놓아서 누구나 즐길 수 있어요. 마치 우리나라 서울 한강 고수부지 수영장 같은 느낌인데 크고 넓고 깨끗해서 많은 사람들이 편히 즐기는 곳이었어요.
햇볕 강한 라군 곳곳에 저렇게 파란 장막을 쳐놓았는데 미끄러질 듯 커다란 나뭇잎 모양들이 한껏 모여들었다 사라졌다 하는 거에요. 저게 뭘까. 고개를 들고 한참을 쳐다보았어요. 앞은 뾰족하고 뒤는 깃처럼 모아지고 수 십 장이 미끌했다가 또 화드득 사라지고. 고개를 돌려 장막의 끝을 보니 저기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은 초록색 잎이 아닌 흰 갈매기였어요. 다리와 부리는 노랗고 흰 몸에 회색빛 날개 그리고 부릅뜬 눈으로 꼿꼿한, 호주에서도 한국에서도 친숙한 그 새였어요. 아, 수영장이지만 바다로구나. 그렇게 짭짤한 공기를 새삼 마셨어요.
육지의 비둘기와 바다의 갈매기는 만나면 좋은 친구,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는 새들이지요.
아버지와 저는 "저기 돌이 굴러와유-"한다는 충청도 사람이라 바다는 마음속 먼 곳이었어요. 저의 어릴 적 기억에 여름이란 계곡 냇물 다시 계곡이지 바다는 별로 없어요. 오죽하면 우리가 바다에 바캉스 간 적이 있을까- 싶게 무더위 바닷가 빼곡한 해수욕장의 사람들은 티비 속의 모습이었죠. 그래서인지 충청도에 사는 우리 식탁엔 제육과 찌개가 많았지 생선이나 회는 가물가물해요. 고등어도 갈치도 엄마가 많이 졸여주셨죠. 그러므로 갈매기는 익숙하지 않은데 익숙한 이유는 무얼까.
던져준 새우깡을 옆으로 날면서 받아먹을지언정 사람들 쪼아대거나 공격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 있어요. 무언가 큰 날개를 펼쳐 찌르거나 굉음을 내지 않을 것 같은 새. 아마도 이 사진처럼 바닷가에 가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듯 늘 있고 또한 날고 저기 멀리로부터 바다의 내음새를 몰고 오는 것 같은 새. 그렇게 한국의 바다처럼 호주의 바다를 갈매기는 지키고 있답니다. 케언즈의 바다에서도 갈매기들은 라군의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듯 머리 위를 날고 잔디를 걷고 산책로를 유유히 노닐고 있었어요. 바다의 새가 맞죠.
위 사진의 갈매기들에 저희 가족은 탄성을 지르며 한참을 보고 있었답니다. 여기는 클리블랜드 포인트라는 곳이에요. 아버지와 함께 간 웰링턴 포인트에서 조금 더 내려온 곳인데 브리즈번이 그래도 바다와 가까운 도시라 이렇게 바다를 보고 휴식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멀지 않게 몇 개 있어요.
이 날은 바람이 많고 이제 막 해가 질 무렵이었는데 하나 둘 모르는 사람들이 넓은 잔디밭에 모여들어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치 우리들처럼 갈매기들도 하나 둘 셋 넷 한 줄에 맞추어 내려앉더라고요. 너희도 함께 여기를 보는구나. 그렇게 말없이 여러 사람들과 여러 갈매기들이 해가 떨어지는 그곳에서 함께 바다를 보았답니다. 우리처럼 그들도 가만히 함께 있었어요.
우리도 그랬어요. 아버지 엄마 동생 저 그렇게 함께 있었어요. 저렇게 줄지어 앉아 함께 웃고 그렇게 한 줄로 함께 행복하고 무언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따뜻했답니다. 그렇게 저는 호주에서 갈매기들을 보면서 이 새도 새니까 아버지가 좋아하시겠지 생각하고요. 옹기종기 함께였던 우리 가족 넷을 생각했어요.
이제 제 옆에는 새로운 가족이 세 명 있어요. 아버지와 함께 한 날들이 아직은 더 많지만 이들과 함께 한 날이 나날이 늘어가면서 저도 아버지처럼 나이가 들어요. 그러나 자꾸만 시간이 지나도 아버지와 함께 한 날들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