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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Dec 25. 2023

엄마와 유황앵무

Cacatua

150만원이 날아간다.


죄송해요 아부지. 둘째가 하도 저 새가 얼마였냐고 해서. 언젠가 들은 것처럼 한 150만원 할 걸-하고 말해줬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집은 '새'로 보자면 꽤 부자였네요. 방 한가득 전국의 유명한 새들이 가득 있었으니. 돌아보면 엄마에게 미안했다고 하시지만, 저는 좋았어요. 새를 키우는 취미를 가지고 계신 아빠는 드물었으니까요. 물론 술을 전혀 못하시는 아빠라서 만취 아빠가 주는 용돈은 없었지만. 방 하나 가득 새들은 저의 자랑거리였어요.


제가 기억하는 그 방안의 새들은,


회색빛 문조들, 이들은 문조'들'이 어울려요. 대가족처럼 한꺼번에 많이들 날았거든요. 짙은 빛깔이라 튀지 않았지만 무리 지어 순해 보였어요. 조금 예쁜 참새 같다고 느꼈는데 참새목이더라고요. 영어이름도 Java sparrow-자바에 사는 참새에요. 실제 자바나 발리와 같은 인도네시아에서 서식한데요. 십자매랑 유사하다는데 그러고 보니 문조나 십자매들은 자그마하고 무리 지어 참새처럼 조잘거렸어요.


잉꼬는 잉꼬부부라는 말처럼 무언가 쌍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기억해요. 노란색 커플 녹색 커플처럼 둘씩 짝지어서 우리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듯 아주 끈끈했어요. 아부지가 늘 말씀하시던 수컷이 암컷에게 토해 먹이는 새의 이미지는 제게 이 잉꼬로 남았어요. 암컷을 둥지에 두고 먹이통을 오가는 수컷의 빛나는 색깔, 작은 앵무라는 별명처럼 다양한 색의 잉꼬를 아버지는 사랑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 공작새에요.

이 새가 온몸을 활짝 폈을 때 그 수많은 눈들이 저를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그 후로 공작은 한 마리가 아니고 무수한 몸들을 달고 있는 거대 생명체로 보였달까요. 어린 저에겐 악몽을 꾼다면 반드시 공작이어야 할 것 같은 기괴한 이미지였지만 또한 지지배배 다른 새들과 달리 사뿐히 걷는 우아함이 있었어요.


이밖에도 카나리아 구관조 제가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까지 정말 다 있었죠. 수많은 새장으로 가득 둘러싸인 그 방은 이상하고 아름다운 새들의 낙원이었어요. 새장 안의 신세였지만 물이며 밥이며 소복이 모아서 먹이신 삶은 노른자까지 극진하고 깨끗한 대접을 받는 남다른 새들이었지요.


아부지는 그렇게 그들을 아끼고 좋아하셨어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애틋하며 마음의 울림을 준다고 하셨어요. 아버지를 따르기 위해 그들을 다 돌보고 뒷바라지한 엄마도 "어느새 나도 새가 좋아졌지."라고 하셨죠. 그래도 신혼인데 엄마 생일 선물로 새를 사주셨다는 건 좀, 아부지 실망이에요. 그렇게 새를 좋아하신 아버지도 유황앵무만큼은 마음이 좀 덜 가시는 것 같아요.


기억 못 해요 저는, 그렇게 어릴 적이니. 아빠 따라서 매일 물 주고 밥 주고 새장 청소해 주는 엄마도 어느새 새들을 귀여워하는 애완인이 되셨다는데. 아니 정이 들고 새가 따르면 바닥을 걷고 말도 좀 한다면서요. 그래서 그날도 그렇게 손 위에 올려두고 귀여워하셨던 거죠? 귀히 여기던 그 새는 새일 뿐이라서 엄마의 입술 위를 콱 물었다고요? 피가 철철 났겠어요 젊었던 우리 엄마. 걔가 날 잘 따랐는데 그랬는데 말이야.


저는 잘 보이지 않지만 엄마의 고운 얼굴에 그 흉터가 남았다고요? 엄마를 그리도 사랑하시는 아버지시니, 네 이해합니다. 저 자라고 나서 기억에 유황앵무는 별로 안 키우신 것 같아요. 별로 보고 싶지 않으셨겠어요. 그렇게 아끼고 사랑을 주었는데 한 순간에 물어버렸으니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저는 유황앵무가 날아가는 걸 보면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가리게 되어요. 크고 단단해 보이는 부리만 봐도 무언가 쿡 찍을 것 같고요.


아마 제가 유치원 다닐 적이니 6-7살 즈음인 것 같아요. 어렸는데 알고 있었어요. 저도 오늘 유치원 현장학습 가고 싶은데 무언가 부모님이 못 보내신다는 걸요. 이렇게 큰 집에 널따란 마당에 새도 방 한가득 있는데 왜 난 유치원을 못 가지? 창문 앞에 오래도록 서서 창밖만 보고 있었어요. 저기 친구들이 소풍 가는 것도 같고 저기 유치원 파하고 모두들 집에 오는 것 같고. 방 하나를 차지한 새들이 미웠어요. 새집 문을 다 열어주면 나와서 나를 콕콕 찍어댈까 봐 차마 열지도 못하고 창문 곁에서 종일 끙끙거리며.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어요. 엄마가 유치원 소풍에 스커트와 힐 신은 차림인 것을, 자연농원 소풍 때 선생님이 저랑만 따로 사진 찍으신 이유를, 유치원 졸업 사진과 앨범이 없는 이유를요. 우리는 이사를 가야 했고 그 겨울 유치원 다닐 여유가 없었고 아버지는 워낙 엄마의 정장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소풍용 옷이란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아빠, 저는 그 시간을 아주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등에 인형을 둘러맨 제게 그 수많은 새들이 각기 다른 소리로 말을 걸어주었거든요. 현장학습날 그 딱 하루만 슬펐고 나머지는 괜찮았답니다. 유치원 생일잔치에서 남자친구에게 뽀뽀해 주었고, 엄마 손 잡고 소풍 달리기 1등도 했고, 딸기농장에서 수줍게 웃는 모습이며 계단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 등등 졸업은 못했지만 많은 것들이 남아 있어요. 그러니 혹여나 걱정 마세요- 그 마당집의 기억과 여러 번의 이사는 제게 따뜻하고 즐거운 날들입니다.


오늘도 저 하늘을 유황앵무들이 날아갑니다. 아니 그 비싼 새들이 왜 이렇게 널려 있는지. 아버지 호주 오셔서 함께 유황앵무를 보았을 때,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는 엄마를 문 고얀 녀석으로, 저는 마당 넓은 집 반짝이는 날들의 친구로. 그렇게 여기 호주엔 오늘도 자유로운 날갯짓으로 저 앵무들이 많이도 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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