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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Dec 18. 2023

수영장의 오리

duck

누가 엄마 오리일까요?


정답은

가까이 다가서자 꽤액- 소리를 지르는 맨 왼쪽 녀석입니다.


사진 좀 더 예쁘게 찍으려고 한 발 앞으로 갔다가 아이구- 입을 저렇게 크게 벌리는 게 물리겠다 싶었어요.


세 마리가 몸이 비스무리하죠. 사실 둘은 아주 아주 꼬마들이었는데 말이에요.


오늘 이야기해 볼 새는 오리입니다. 새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게스리 익숙하고 친숙하고 동물원에도 있고 마트에도 있고 식당에도 있고. 닭과 더불어 무언가 어렵지 않은 동물이에요. 새라고 하기엔 훨훨 나는 모습을 그다지 본 것 같진 않지만 두 날개에 갈퀴 달린 발까지 공중전 수중전 모두 가능한 녀석들이죠.


그 오리들 중에서도 오늘의 주인공은 '수영장의 주인들'입니다.




빠르고 정확하고 안전한 우리나라 사랑해요. 그러나 정말, 호주의 넓은 땅이 부러워요. 모든 것은 거기에서 시작되었어요. 땅이 넓으니 자연이 많이 보존되고 숲이 많고 동물이 자유롭고 그리고 수영장. 드넓고 깨끗한 야외 수영장이 이리도 많아요. 땅이 넓으니까요. 땅은 어쩔 수 없으니 부러워하지 않기로-


운동은 늘 어렵다던 제가 그래도 50미터 수영장 왔다 갔다 10바퀴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빠르지 않아요. 애들 학교 데려다주고 그 옆 수영장에 가는 거예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천천히 왔다리 갔다리 돌면서 머리를 식혀요. 오늘은 뭐 먹지, 틴에이저가 된 아이들은 이제 내 손 밖에 있구나. 호주의 더위는 무섭구나. 얼굴이 이렇게 타다니 물안경 자국이 나서 어쩌지 등등. 야외 수영장이 워낙에 길고 넓으니 한 레인을 한 사람이 쓸 수 있어요.(우리나라 새벽 수영에서 아줌마들이랑 줄줄이 도는 것이 사실 열량 소비에는 최고였는데. 아줌마들 정겹고 예뻐라 해주시고) 그렇게 가서 돌고 와서 돌고요. 아부지, 말이 쉽지 100미터가 10번이니 저처럼 운동 못하는 애가 진짜 많이 발전한 거에요. 개천에서 용은 아니고 혼자 천천히 풀쩍 가는 개구리 정도는 될 거라구요. 그렇게 여느 날처럼 돌고 있는데


악 이 괴물들은 뭐야


뭔가 넓적한 발들이 여러 개 눈앞에 둥둥 떠서 자유형하다 고꾸라질 뻔했어요. 고개를 들어 물 위를 보니 마치 여기 내 레인이거든-의 표정으로 오리들이 둥둥 떠서 가네요. 어떻게 저런 표정일 수 있지? 마치 수영도 못하는 게의 표정으로 물 위의 몸은 유연하고 물 아래 발은 부드럽고 빨라요. 나도 오리발 스핀 있으면 저렇게 할 수 있겠다-라는 유치한 생각을 떠올리며 거기서부터 오리들의 뒤를 따라 걸었어요.


물 위를 미끄러지듯 가는 오리 네 마리, 그리고 뒤뚱거리며 물속을 걸어 따라가는 사람


네, 맞아요. 처음에 이들은 엄마 오리와 3마리 아기였어요. 그렇게 수영장 어디든, 마음 내키면 들어와 휘젓고 지루하면 풀밭에서 뭘 좀 뜯어먹다가 벤치 아래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들이었지요. 수영장에 온 할아버지도 아기도 수염이 막 돋아난 10대들도, 이 오리 가족을 보면 레인을 내어주고 고운 눈으로 바라봐 주었어요. 그때는 아기 오리들이었으니 엄마를 따라 뒤뚱거리는 폼이 여간 예쁜 게 아니었죠. 그렇게 모두의 사랑을 받다 보니 어느 날인가는 이런 안내판이 붙어 있어요.

오리에게 먹이 주거나 만지지 마시오.

먹이 주지 말라니. 얼마나들 주고 던지고 쳐다보는지 간판까지 내걸었더라고요. 지나가는 아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아버지가 보셨으면 하루 종일 이쁘다 계셨을 거예요. 제가 오리들 볼 때마다 따라가면서 사진도 영상도 찍곤 했던 것처럼, 아버지 이들을 오래도록 따라가며 바라보셨겠죠?

이 레인은 내 꺼다 오리

이들은 수영장에서 첨벙 수영도 하고 어린이 슬라이드 주변을 뱅뱅 돌고 수영장 물도 오로록 마시고, 그들이 이렇게 주인이니 제가 수영하는 레인에 들어온다면? 네네 제가 옮겨야 맞지요. 처음 그들을 만난 게 8월이었으니 어느새 4달이 되어 갑니다. 아기 오리 1마리는요. 사라졌데요. 날개가 달린 새이니, 수영장 밖을 맴돌다 사라졌나 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호주의 겨울이라 아침엔 쌀쌀했는데 수영장 물은 온수라 그들도 물 안에 들어와 노곤하게 있곤 했거든요. 그 3마리가 2마리가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안쓰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자연에서 자라는 그들은 길을 잃기도 엄마를 잃기도 하네요. 오리 엄마가 처음엔 가까이 가도 그렇게 소리를 지르진 않았는데. 아가를 잃어버려서 그런가 봅니다.


엄마만큼 자란 오리들을 보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저만큼 자라 옆에선 제 모습이 보였어요. 순간 너희 오리 2마리 엄마 말 되게 안 듣게 생겼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요. 아버지도 그런 적 있으시겠죠? 품 안의 딸내미였는데 어느 순간 엄마보다 훌쩍 자라 버려 뚜-한 표정으로 문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14살 제가 보여요. 저는 들어가서 나를 나대로의 다 큰 나를 보고 있었는데 문 밖의 엄마 그리고 아빠는 쓸쓸하고 허전하고 야속하셨겠어요. 그렇게 이뻐라 귀여워해주셨는데 그걸 다 기억하는데 10대인 저는 왜 그랬을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 십 대인 제 딸에게 할 말이 없어요. 어쩜 저렇게 나랑 똑같을까. 그래서 아버지는 이 아이를 그렇게 사랑하시나 봐요. 어릴 적의 저와 젊었던 아버지가 보이시나 봅니다.


집오리라고 키우는 그리고 먹게 되는 오리들을 오리 농장에서 함께 본 적이 있어요. 그들은 잘 날지 못한다면서요? 제가 본 이 오리들 천둥오리가 맞나 봅니다. 어미의  꼬리 즈음에 푸르고 깊이 빛나는 초록색 털을 보았어요. 아니 천둥오리는 머리도 초록 아니던가 했다가. 암컷이라 그렇구나 합니다. 암컷에게 사랑받기 위해 온갖 화려함으로 자라난다는 수컷에 대해 아버지가 이야기해 주셨죠. 그리고 또 암컷을 보니 제 자식을 지키기 위해 튀지 않는 보호색으로 저렇게 수수하다는 설도 맞다 싶습니다. 그렇게 수컷과 암컷이 같지만 조금은 다르게 제 새끼들을 키워갑니다. 근데 이 가족의 아버지는 그러고 보니 잘 보이지 않아요. 먹이 찾으러 갔는지.


아버지 지난주 [따오기] 편 링크 보내드리고 아버지 어릴 적 따오기 이거 맞아요? 했더니

맞아 내가 어렸을 때 본 따오기야


이 말씀에 신이 났어요. 어느 검색창 백과사전 조류백과 다 뒤져도 1970년대 공식적 멸종했다는 우리나라 따오기, 그 따옥 따옥 우는 따오기가 이렇게 생긴 게 맞나 아니면 어쩌지 했거든요. 그렇게 5-60년대를 거치며 성장해 오신 아버지의 마을과 숲 속의 소리와 무성했을 자연이 한꺼번에 떠올랐어요. 그래 그땐 그랬구나 맞는구나. 그런 시절이었구나. 이어지는 아버지의 고백 아닌 새 사랑 고백에 또한 뭉클해졌습니다.

호주의 따오기와 한국의 따오기는 조금 다른 종류이다. 호주 따오기가 거리에서 빵부스러기를 찾아다니게 만든 원인은 사람들이 자기의 터전을 망가트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반성해야 한다. 오늘은 아빠가 새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려 한다. 사람들은 성인이 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린다. 그리고 그 가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새들은 그 조그마한 새장 안에서 한 가정을 꾸린다. 수컷을 잘 만난 암컷은 횟대에 있다. 수컷은 먹이와 물과 야채를 먹고 뱃속에서 자기 체온과 똑같이 되면 토해서 암컷에게 먹인다. 특히 새끼를 키울 때는 정말 눈물겹다. 암컷이 알을 낳고 품으면 쉬지 않고 먹이를 물어다 먹이고 암컷이 화장실이라도 가면 얼른 대신 알을 품으며 암컷을 배려한다. 새끼가 나오면 분주하게 먹이를 물어오며 특히 저녁때가 되면 밤새 먹이를 주지 못하니 배가 터지도록 먹이는 것을 보고 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것이 내가 새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빠도 우리를 그렇게 키웠잖아 다 내어주면서. 그래서 나도
아빠를 존경하고 좋아해♡


하트가 쑥스러운 건, 앞으로 하트를 자주 보내야 한다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오리 엄마처럼 어디서든 저를 지켜주시는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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