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인지 모를 소음이 내 귀에 너무 가까이 들려 잠에서 깼다. 여기가 어디지... 아... 집. 엄마랑 내가 살던 집. 엄마와 내가 함께 누워 잠을 잤던 곳. 이제는 혼자 누워 있는 곳... 커튼 틈새로 삐져나오는 햇빛과 함께 현실이 밀려오자 짜증이 확 올라와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끼야아아아아아
또 귀옆에서 소리가 들린다. 뭐지? 몸과 고개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동시에 돌린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끼이이아아아아아
커튼을 살짝 걷었다. 창문 앞 검정 금속 난간 위에 커다란 회색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너무 가깝다. 하.. 깜짝이야. 뭐야. 너는 왜 놀라지도 않아? 나는 이렇게 놀랐는데? 아무리 창 밖이어도 커튼을 열 정도면 뭔가 느껴서 날아가지 않나? 일어나 앉을 힘도 없어 그대로 누워서 바라본다. 소리도 이상한 게 생김새도 제법 요상하게 크다. 두리번두리번 바깥 하늘 쪽이 아닌 방 쪽을 바라보고는 한 발 한 발 움직여 자리를 이동한다. 그러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는 또 이상한 소리를 낸다.
끼이아야아이아아아아
뭐야. 대체. 새 울음소리가 왜 저래? 입은 또 뭐 저리 큰 거야? 너 뭐 찾니? 배고파? 아님 뭐 화난 거 있어? 내가 뭐 잘못했어? 너무도 크고 괴이한 소리가 하도 어이없어 나도 모르게 힘겹게 주저앉아 새와 마주 보며 앉았다. 다락구조라 그런지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니 창밖 울타리에 앉은 그 요상한 새와 눈높이가 딱 맞았다. 놀라서 날아가버릴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 않다. 뭐지? 안 보이나? 녀석도 뭐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순간 머리털을 쭉 들어 올린다. 우와... 마치 새 머리에 누가 왁스를 발라서 세워 준 것처럼 3~4갈래로 나뉜 털이 제법 멋지게 솟아오른다. 신기하다. 너 신기하다. 얼마나 흘렀을까. 그렇게 새와 마주 보고 있었다. 내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가만히 바라보다 옆을 보다, 한 발씩 움직이기도 한다. 한참을 보니 나름 멋진 구석도 보이고 호감이 생기려는 찰나, 잔디 쪽을 바라보더니 후룩 날아가 버린다. 작은 창문 시야에서 그렇게 사라졌다. 흠.. 뭐지? 저 새는? 덕분에 잠은 완전히 깼다. 새는 사라졌지만 일정 시간 가만히 있었나 보다. 멍하게 바라보던 시선에 어느 순간 초점이 맞춰지더니, 그 끝에 자그마한 장미꽃이 보인다. 정원 가운데 쪽에 있는 연한 분홍 빛깔의 꽃. 와.. 올해도 피었구나! 어쩜 저렇게 오랜 세월을 똑같을까?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엄마가 사다 심었던 장미 나무 중에 하나였던 저 아이는, 늘 저 키를 유지했다.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지도 않았다. 죽은 듯 보이다가도 다시 힘을 내서 늘 저 키를 만들었다. 항상 한 번에 딱 한 송이 꽃만을 피워냈다. 더 늦게 심은 장미 나무 한 그루는 한쪽의 울타리 전체를 덮을 만큼 시간이 지났건만 저 아이만 그대로다. 늘 한 해에 한 두 가지만 유지했다. 그러고 보니... 참 신기한 게 많구나.
다시 눕고 싶지는 않았다. 잠이 깼으니 뚜벅뚜벅 아래로 내려왔다. 배가 고픈가? 식탁 아래 수납장을 연다. 엄마가 좋아하는 감자 과자가 보인다. 내가 늘 쟁여두었던 엄마의 최애 간식. 한 봉지 챙겨 들고, 반쯤 남은 생수 병 하나 챙겨서 엄마 방으로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간식을 열고, 흰 서랍을 연다. 포근포근 감자 과자를 씹으며 가만히 둘러본다. 오늘은 뭘 열어볼까..... 라... 바? 한쪽 구석에 웃기게 생긴 표지의 작은 수첩이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기억이란 녀석이 내 머리를 톡 건드렸다. 와... 이거!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 선물로 받았던 수첩이다. 받아서는 엄마에게 선물로 주었던 그 수첩이다. 이게 언제 거야 진짜? 이제 보니 표지가 너무 어이없다. 학교에서 수첩이나 노트, 젤리나 초코바를 받으면 늘 가방에 넣었다. 빨리 집에 가서 엄마 줘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항상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적고 계셨던 엄마였다. 나 보다도 젤리나 과자, 초콜릿을 좋아했던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우리 엄마는 그랬다. 파란 배경에, 분홍 라바 여자친구가 울먹이며 햄버거를 떠올리는 웃긴 그림의 수첩을 꺼냈다. 생각보다 두꺼운 표지를 신기하다 여기며 활짝 열었다.
230106 12:01
일단 날짜에서 멈추었다. 2023년 1월이면... 이때가 언제지? 내가 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한참을 계산해야 알 수 있었다. 그럼 엄마 나이가... 그렇게 엄마 나이까지 계산하고 난 뒤에야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건 시간이구나. 12시라... 새벽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점심? 아마도 점심인 것 같다. 엄마는 왠지 24시간 체계로 시간을 표기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은 몇 시지? 문득 어이없는 궁금증에 고개를 돌리니 11시 57분이다. 오~ 꽤나 비슷한 시간! 괜한 동질감에 미소를 지으며 글을 읽어 내려간다.
잘못된 것임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그냥 지나쳤다. 다시 돌아보는 게 귀찮았다.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잘못된 매듭으로 인해 이후 모든 매듭들이 이상해졌다. 나를 지켜보던 다른 이들의 시선과 표정을 살폈다. 귀를 기울였지만 그 누구도 괜찮다 혹은 이상하다 말하지 않았다. 찝찝했다. 어느새 마무리를 앞두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다 멈추었다.
‘가장 중요한 걸 빠트렸구나!’
내가 괜찮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계속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평가가 궁금했다. 누구라도 볼라치면 피드백을 기다렸고, 아무 말 없는 그들의 표정 변화에 민감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자, 가장 큰 문제였다.
풀기로 마음먹고 풀었다. 막상 풀기 시작하니 그전 어색했던 부분까지 모두 풀어냈다. 너무도 순식간이었고 참으로 쉬웠다. 그다지 아깝지도 않았다. 오히려 답답했던 그 부분들이 모두 풀리니 기분이 좋았다.
새로 시작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나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속도도 빨라지고, 마음도 편했다. 마음에 들었다. 다 만들 때까지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다 만들고 보니, 마지막 잎 부분이 다소 올라간 듯했지만, 전체적으로 멋스럽고 예뻐 보였다. 괜찮았다. 다른 이들이 괜찮다 말해주어서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 괜찮았다.
그렇게 나의 첫 마끄라메 행잉 작품이 완성되었다.
뭐야. 마끄라메 행잉 이야기였어? 괜히 긴장했네! 엄마의 유머 코드인 건가? 흐흐. 괜히 웃겼다. ‘잘못된 것임을 느끼기 시작했으나’라는 첫 시작이 나를 괜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음 글귀를 읽기도 전에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에 생각을 더했던 것 같다. 아무 의미 없는 추측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읽어 내려가다 보니 엄마가 처음 만들었던 마끄라메 행잉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끄라메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얻었던 엄마였는지 모르지만, 일단 나는 웃겼다. 괜한 걱정과 상상을 더했던 내 모습과 엄마의 글이 더해져 웃음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마끄라메는 어디 있더라?'
거실로 나가서 천천히 집을 훑었다. 찾았다! 주방의 한쪽 벽에 기다랗게 만들어 있는 오트밀 빛깔의 행잉! 이게 엄마의 첫 마끄라메 작품이었구나. 역시 우리 엄마는 솜씨가 대단해.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참 멋스럽다. 심지어 이게 처음 만든 거라니. 못하는 게 뭐야 진짜! 잠깐 보고 있으니 바로 옆의 인덕션이 눈에 들어온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아니다. 누룽지! 누룽지 끓여야겠다. 할머니가 엄마랑 아침으로 먹으라고 만들어주신 누룽지가 냉장고에 있을 거다. 고소한 누룽지. 맛있겠네. 어느새 뜨끈뜨끈 고소함이 입안에 차오른다. 엄마 덕에 한바탕 웃고 나니 몸이 좀 가벼워졌다. 인덕션에 다가가 전원 버튼을 꾸욱 누른다.
승혜가 펼쳐 놓고 나간 책상 위 수첩 한 장이 넘어간다. 자그마한 17줄 안팎의 페이지 중 딱 다섯 줄에 무언가 적혀있다.
불안해하지도 초초해지지도 않기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보다는
설렘 즐기기.
생각에 지배당하지 말기.
생각을 내가 지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