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도 다녀가고 할머니도 다녀가셨다. 자꾸만 집에 며칠이라도 머물겠다는 걸 겨우 막았다. 그러면 함께 가자 라는 이야기에 왠지 슬퍼져서 말없이 다락으로 올라와 누워버렸다. 왜 슬픈 건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를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런가 보다.
핸드폰도, 엄마도 없으니 오롯이 이 세상엔 나 혼자구나. 한참만에 눈을 떠서 든, 첫 생각이었는데, 이유 없이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턱턱 턱턱.
"아휴~ 따님~ 집 무너지겠어요. 살살 내려오시죠~."
그러게 엄마. 난 우리 집 다락만 내려오려면 온몸의 무게가 발에 다 실리더라. 엄마가 계셨다면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했으리라. 어른들이 다녀간 자리에는 늘 먹거리가 넘쳐난다. 나도 이미 세상에서는 어른이 된 지 한참이지만, 적어도 이 집에서만큼은 어린애이고 싶다. 바나나 하나를 들고, 식탁을 내려보다 군고구마 하나를 더 챙긴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누가 채웠는지 음료도 한 가득이다. 흰 우유와 바나나 우유까지 들고 나니 두 팔이 시려온다. 자꾸만 감정의 기복과 함께 체력이 들쑥날쑥 하니, 엄마의 기록을 찾아보는 것도 일정치 못하다. 얼마 만에 여길 앉아보는 거니. 하얀 책상의, 하얀 의자에 앉아, 하얀 서랍을 열어 기분 전환 겸 새로운 노트를 찾아본다.
하얀 바탕에 점점점점. 그리고 삐뚤빼뚤 쓰였는데 너무도 멋스러워 보이는 글씨. 그리고 민들레 꽃. 엄마는 어쩜~ 노트도 이렇게 예쁜 것들을 구했을까? 또다시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2015.12.27.(일) PM 11:13
"오늘은. 나 하나를 위해 온 우주가 있는 듯!"
나 하나를 위해 산 예쁜 노트-♡
나를 위해 쓰기에도 아까워 아끼던 이 노트를
잠시의 판단 오류로 회의하며 첫 장을 써 버렸다;
다시 정신 차리고 깨끗하게 떼어내고 시작!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어버린 나.
시간이 흐르는 건 어찌할 수 없지만,
아름답게 시간이 흐르면 좋겠다!
하루하루.
나 하나를 위해 오늘은 온 우주가 있는 듯!
그렇게 채워야지♡
아... 나보다 어린 나이의 엄마라니... 너무 귀엽잖아! 그러고 보니 표지를 한참을 들여다봤었는데, 표지에 쓰여 있던 글씨도 보았는데, 그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구나 싶다. 엄마의 메모가 적힌 우측 하단의 공간에 쓰여 있는 표지와 같은 글씨의 문구. "너 하나를 위해 오늘은 온 우주가 있는 듯"
볼 수록 매력적인 그 문구를 속으로 되새기며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햇살이 참 좋구나! 파아란 하늘에 귀여운 구름이 조각조각 무늬를 만들고 있다. 잔디는 할머니가 손보신 건가? 아니면 너희 스스로 적당하게 멈춘 거니? 노랗게, 빨갛게 꽃도 많이도 피었네. 엄마 보내고 챙기지도 못했는데 너희는 어찌 그렇게 예쁘게도 핀 거니? 또다시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아... 혹시. 오늘이니? 온 우주가 나 하나를 위해 있다는 그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