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며칠 괜찮았기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몸이 이상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힘이 없다. 독감 걸린 것처럼 극도로 몸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다. 은근한 통증이 온몸에 걸쳐있고, 힘이 하나도 없다. 몸이 너무 무겁다. 아침부터 이유도 모르게 힘이 빠져서 일어났다가 화장실만 다녀오고는 다시 다락 침실로 향한다. 암막 커튼을 사야 하나... 너무 눈이 부시다. 커튼을 쳤는데도 눈이 부시다. 창문을 등지고 누워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계도 핸드폰도 없는 승혜의 공간에서는 알 수가 없다. 여전히 밝은 햇살만 느껴진다. 이럴 줄 알았어... 속이 메슥거리는 듯하더니, 울렁거림을 느낌과 동시에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아... 약을 먹어야 한다. 또다시 찾아온 편두통이다. 독한 약이기에 빈 속에 먹으면 속이 버텨내지 못할걸 알지만 아무런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다. 송곳으로 찌르듯 다시금 느껴지는 두통에, 얼른 달걀 하나를 꺼낸다.
약을 먹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한참을 고생했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다가 서늘한 느낌이 들어 다시 다락으로 향한다. 손에는 연보라색 다이어리 하나 들고 있다. 엄마의 다이어리다. 몇 년 전 것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열어보면 적혀 있겠지. 승혜는 매년 12월이 되면 엄마와 온라인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장바구니에 몽땅 담고, 사은품으로 주는 품목들 중에서 다음 해에 쓸 각자의 다이어리를 고르곤 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디자인이었다. 어릴 적 엄마의 뒷모습이라 해도 제법 잘 어울릴만한 예쁜 소녀가 뒷짐 지고 서 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눈에 들어온 익숙한 표지가 그저 마음에 들어 챙겼다. 하지만 편두통의 고통에 지쳐버린 승혜는 표지 한 장 넘기지 못하고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뜨니 이른 여름을 알리는 뜨거운 햇살도 지쳐 떠나갔는지 방이 제법 어두워져 있었다. 이제야 눈을 좀 뜨겠네. 여전히 힘이 하나도 없어 눈만 끔뻑이며 한참을 또 흘려보냈다. 어딜 보고 있는 거야. 나 좀 보지. 뒷모습만 보이는 여자 아이가 갑자기 맘에 들지 않아 무거운 손을 힘껏 들어 손에 집히는 대로 다이어리를 툭 열었다. 이제 좀 났네. 원래의 색인지 시간이 지나며 변한 건지 누런 빛깔을 띠는 종이가 되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펼쳐진 부분과 마주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글씨가 승혜의 눈에 들어온다.
늦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지금이. 딱. 좋은 시기이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딱 좋은 그런 날이 바로 오늘이다.
그래서.
오늘은 여유를 즐겼다. 그냥 풍경도 보고, 하고픈 걸 했다.
천천히.
그걸로 족했다. 좋다.
엄마의 짧은 메모를 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처음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솟아 나오더니, 이내 아이처럼 통곡하며 소리 내어 울어 젖힌다. 장례식 이후 4개월 만에 마음껏 소리 내어 울어 보는 승혜다.
그렇지 엄마? 오늘은 여유를 즐겼네. 그래. 이걸로 족하다. 나도 좋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