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by 하늘꽃

2016.1.14. AM 9:21


잔잔한. 소소한. 특별한 행복


내 인생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것 같던 행복을 느끼고 있다.

따뜻한 햇살이 옅은 커튼을 통해 느껴지는 것 같은.

따스한 날 푸르른 바다에서 잔잔한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같은.

맑은 숲의 향기에 빠져 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행복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다.

내게도 이런 행복이 오는구나. 나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남들에게만 보이는 행복이 아닌...

진정 나 스스로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이 행복...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선은 수첩을 향해있는데, 고추냉이맛 아몬드 네다섯 개를 저도 모르게 연거푸 손가락으로 집어 먹더니 손가락에 남은 시즈닝을 쪽 하고 아이처럼 빨아먹는다.

“아, 뭐야? 히로! 왜 또 간식을 가져다 놨어?! 오늘만 벌써 얼마 큼을 먹이는 거야 진짜? 너 이럴래?”

이미 거실로 나가서 오류 뜬 정원관리 시스템 정비를 하고 있는 히로는 승혜의 투정 섞인 외침에 기분 좋게 웃는다.

“승혜가 힘을 많이 차렸네요. 아까 뒤에서 기본 검진도 간단히 진행했는데, 그래도 생각했던 것만큼 많이 나쁘진 않아요. 편두통 약을 너무 빈 속에 많이 먹은 것 같고, 전체적으로 영양실조에 가깝지만, 그래도 저 정도 회복됐으면 다 된 거죠. 그렇죠? 제가 식단 관리 잘할 거고, 견과류도 잊지 않고 잘 챙길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 무엇보다 제게 말씀 주신 거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나 믿죠?”

거실 통창으로 희로가 바라보는 곳에는 굵직한 나무수국 한 그루가 서 있다. 새로 난 잎들의 색이 주변 나무들에 비해 유독 싱그럽고 예쁘다. 연둣빛과 초록 사이의 오묘한 빛깔의 잎이 하나 둘 찾아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히로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듯 움직인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

어쩜~ 우리 엄마는 스티커도, 이렇게 예쁜 걸로! 이런 건 어디서 구하셨으려나? 분홍빛 풍선껌으로 풍선을 큼지막하게 불어 입에 물고 있는 여자 옆으로 하트가 무려 세 개나 있다. 분홍색이지만 세 하트 모두 다른 분홍색이다. 그리고 적힌 글귀. 생김새도 내용도 예쁜 글씨. 그렇게 한참을 스티커를 바라보고 있다.


“희로야, 나 머리 자를까? 이 스티커 속 여자 머리 스타일 맘에 드는데? 어? 내 말 듣고 있어?”

승혜의 재촉에 금세 승혜 옆에 온 히로가 이야기한다.

“어디 봐요. 음~ 승혜 님은 피부도 하얗고 얼굴형도 예뻐서 이 헤어디자인 아주 잘 어울려요. 봐요. 이런 모습이에요. 어때요? 지금 잘라드릴까요? 앞머리도 이렇게요? 앞머리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지 않나요? 기분 전환 겸 이참에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알죠? 저 머리도 잘해요. 지금 바로 시작해 볼까요?”

“하하하하하하. 히로야. 너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어? 뭐 그렇게 말이 빨라. 왜, 내가 마음 바꿀까 봐? 크크크크. 너 진짜 귀여웠어. 방금~ 그래! 해 보자. 와. 얼마 만에 단발이야? 이 스티커 속 여자처럼. 이 스타일로 해 줘 봐. 우리 엄만 어디서 이렇게 예쁜 것만 다 가지고 있다니?”


자리도 옮기지 않고 그냥 엄마의 책상에 앉아, 보던 수첩을 그대로 독서대에 꽂아둔 채로 바라보며 히로에게 머리 손질을 받는다. 부드러운 히로의 손길과 슥슥~ 머리를 자르는 가위질 소리가 편안하게 느껴져 자연스레 눈이 감긴다. 잔잔한. 소소한. 특별한 행복. 엄마는 저 날 어떤 일을 하며 저 감정을 느낀 걸까? 근데, 엄마... 나 지금 엄마가 말한 그 순간에 있는 것 같아요.


눈을 감은 승혜는 펼쳐진 엄마의 수첩 맨 아래. 어여쁜 스티커 아래에 적힌. 핑크빛 펜으로 귀엽게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둔 엄마의 문장. 그 마지막 문구를 나지막하게 읊어본다.

“나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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