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2부. 인정하면 비로소 보인다 5>

by 하늘꽃

숨지 말자. 포장하려 하지 말자. 눈치 보지 말자. 너무 애쓰지 말자.

삼십 대를 마무리하고 사십을 시작하던 내가 아침마다 다짐하고, 틈만 나면 되새김질했던 문장이다. 말자. 말자. 말자. 말자.로 하루를 시작하니 때때로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자꾸만 포장하려 하고, 뒤로 숨으려 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기에 내린 극단의 조치였다.


하루를 보내고 난 나를 되돌아보면, 뭐 그리 생각이 많은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는 당신의 MBTI가 뭡니까? 아! 그게 원인이군요!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가 중요하랴. 중요한 건, 너무 많은 생각과 염려, 걱정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삼십 대 후반부터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공부를 했다. 이미 공부라면 할 만큼 한 사람임에도, 알고 싶고 궁금했다. 어느 날 미술치료 관련 공부를 하다 알게 된 '인지행동치료'와 '부정적인 사고의 틀'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인지행동치료: 개인의 자동적 사고, 즉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과 왜곡된 신념을 수정해서 결과적으로 감정과 행동이 변화될 수 있도록 하는 치료 기법]


1. 대참사 가정하기(Catastrophising): 작은 실수나 상황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게 됨. 긴장과 불안이 지속됨, 건강 염려, 신경과민

2. 독심술하기(Mind-reading):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추측해서 판단하는 것, 묻지 않고 오해

3. 예언하기(Fortune-telling):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암울하고 부정적 미래를 생각, 의기소침, 우울

4. 흑백논리로 생각하기(All-or-nothing [black and write] Thinking): 모 아니면 도, 중간지대를 못 보는 극단적인 것만 생각

5. 긍정적인 부분을 평가절하하기(Discounting The Positive): 누군가 나를 칭찬했을 때 겉치레라 판단, 긍정적 부분을 무가치하게 생각

6. 과하게 일반화하기(Overgeneralization): 하나의 부정적 사건이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보거나, 모든 일이 잘못된 신호라고 생각

7.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Personalisation): 잘못된 일의 원인을 자기 탓이라고 생각


ㅁ 같은 사건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받아들이는데, 생각과 감정, 행동이 모두 달라진다.

ㅁ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감정을 다르게 느낀다(분노, 우울, 걱정, 편안..)

ㅁ 부정적 사고의 틀이 나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나란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여 준 내용들이다. 유독 공부 내용 중 이 부분이 재미있고 인상 깊게 남았던 이유, 굳이 다시 돌려서 제대로 듣고, 정리하며 또 들은 이유가 있었다. 이 내용들을 통해 내게서 나타나는 감정들과 생각, 행동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나란 사람에 대해 비로소 인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생활 속에서, 나란 사람 안에는 ‘독심술’과 ‘긍정적인 부분을 평가 절하하기’가 제법 많이 일어난다. 가끔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도 고개를 내민다. 이런 나의 모습을 꺼내어 놓고 보니, 나에 대한 이해가 시작됐다. 과거 나의 행동들이나 아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났던 시행착오에 대한 이해 말이다. 낯선 이 세상에서 지내면서 쉽지 않다 여겼던 여러 일들이 저 세 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이해하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소중하다 여겼던 이들과의 관계에서 힘들었던 일들이 나의 독심술로 인한 오해였을 수 있겠구나. 굳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내가 독심술로 읽어 내려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나의 마음을 읽어내고 토닥이려 노력해야겠구나.”

나에 대한 이해만큼은 너무도 늦된, 나의 깨달음이었다.


“내가 그동안 나를 너무 무가치하게 여겼구나, 나를 인정하고 아끼고 칭찬해 줘야겠다. 타인의 칭찬을 감사히 받고, 충분히 느끼며 나의 자양분으로 삼아야겠다.”

나란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니, 발전 가능성이 보인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 그게 내 탓은 아니구나.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나를 너무 몰아세우거나 원망하지 말아야겠다. 나를 다독이고, 내가 나를 위로해야겠다.”

나를 위한 다짐을, 비로소 하게 된다.


어느 날은 ‘대참사 가정하기’로 빠져들 뻔한 나를, 인지행동치료에 대해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붙잡았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래. 굳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지레 겁먹거나 주저앉지도, 걱정에 사로잡히지도 말고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이해하며, 오늘을 살자. 그저, 오늘을 살아보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참 잘 살았다! 하루하루 나를 칭찬했다. 그렇게 나의 마흔에도 긍정의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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