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2부. 인정하면 비로소 보인다 4>

by 하늘꽃

“저건 무슨 달이야?”

오랜만에 앉는 자동차 뒷자리. 내 옆에 앉은 둘째가 물었다. 초승달을 바라보며 달리는 차는 아빠가 운전 중이었고, 조수석엔 엄마, 뒷자리에 나와 아이 둘이 있었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이미 달의 모양 변화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큰 아이, 아직 배우기 전인 작은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달의 여러 모양과 이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나온 그믐달. 아직 그믐달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이기에 뭐라 설명하면 좋을지 잠시 멈추었지만, 별 고민 없이 술술 설명했다.

“그믐달은 너희가 보기 힘든 달이지. 보통 새벽.. 3시쯤 뜨고 해뜨기 전에 사라지니까. 우리 딸들이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지. 늦게까지 술 마시며 정신없이 놀다 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나 볼 수 있겠네.”

이런저런 이야기에 달 이야기가 마무리되던 찰나, 아빠가 말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할아버지는 달라. 그믐달은 오히려 엄청 부지런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달이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첫 차 타고 일 나가는 열심인 사람들이 보는 달....”

아빠는 그 뒤로도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나는 순간 멈추었다.


아...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그렇구나. '나 왜 이렇게 삐뚤어졌지?' 처음 든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대화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 대화 안에서 나는 나의 오만함과 아둔하고 어리석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이 참 짧았구나. 새삼 느낀 사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날 나눈 그믐달의 대화는 많은 생각을 남겼다. 한 번도 밤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놀아본 적 없던 나였다. 삼십 대를 늘 새벽 3~4시까지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 시간에는 피곤에 눌려 집 밖을 나가지도, 창문을 내다보지도 않았기에 그믐달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난 그믐달에 대해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왜 이유도, 근거도 없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을 비판하면서 그믐달을 설명했던 것일까? 혹시 나만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만은 아니었을까? 내가 세상 사람들의 삶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게 아닐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 내가 삼십 대 중반을 향해 가던 즈음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거꾸로 수업’이라는 교육 방법이 소위 유행을 하자, 이런저런 근거를 대며 비판하곤 했다. 나는 그 방식은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 이야기했다. 그러나 1년 뒤 박사 과정 중 프로젝트 일환으로 거꾸로 수업의 방식 중 일부를 내 수업에 적용해야 했다. 몇 달 후 나는 어땠을까? 아무도 내게 뭐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나는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해 보지도 않고 이렇다 저렇다 비판했던 내가 한없이 어리석게 여겨졌다. 해보니 내가 말했던 단점도 있었지만, 분명 놀라운 장점도 있었다. 앞으로는 해 보지 않고는, 잘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판단하거나 쉽게 이야기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마흔이 된 지금의 나는 어떨까? 앞선 두 일들과 그 외의 여러 크고 작은 일을 지나온 마흔 초반의 나 말이다. 지금 나는 또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해봤더라도, 이미 경험한 일이라 할지라도 무슨 일이든 단정하지 않으려 다짐한다. 언제든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생각하며 지낸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에 아무리 비슷한 상황과 환경일지라도 결코 같을 수 없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쉽게, 내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십 대나 삼십 대에는 마흔이 되면 내가 더 많은 확신을 가지고, 꽤 많은 부분에서 주저하지 않게 될 것 같았다. 적어도 그때보다는 더 많이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다. 마흔이 되고 보니 세상에 하나의 정답이 있는 건 수학 몇 문제뿐이라는 것 정도 알게 된 것 같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내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생각하는 것도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조금이나마 염두하고 있게 되었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당연하지만 어려운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세상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괴롭히는 일이, 내가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줄어든다. 생각보다 내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직면하고, 나의 모자란 생각을 조금씩 바꾸는 것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흔이 그 지혜를 그전보다 조금 더 던져주는 것 같다.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옳고 그름의 기준이 하나가 아닐 수 있다 생각하니 좀 더 편안하게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요즘 몸이 너무 지치지 않게 일찍 잠에 들고, 새벽에 일어나 그믐달을 가끔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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