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였구나!

<2부. 인정하면 비로소 보인다 3>

by 하늘꽃

오랜만에 커피숍에 지인과 마주 앉았다. 오랜 시간을 쌓은 인연은 아니었지만, 편한 사람이었다. 친구 같은, 언니 같은 후배였다. 1시간 남짓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충분히 깊은 이야기가 오갔고, 하루 속 작은 이벤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30대 후반을 보내고 있는 후배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열정적으로 고민하고 치열하게 방황하던 시간을 이제 막 시작한 후배의 모습이 보였다.

"와! 진짜 축하해요!"

나도 모르게 행복해서 한껏 들뜬 목소리로 불쑥 말이 나왔다.

"축하요? 왜요?"

30대 후반의 나이에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진 후배에게 축하를 먼저 던졌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고민의 시간은 그만큼 자신의 힘든 길을 어느 정도 지나와서 편안해졌다는 증거라는 걸. 후배도 나처럼 험난한 인생길을 한 걸음씩 걷다 보니 쌓인 지혜를 가지고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앞으로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며, 인생의 황홀함을 즐길 시작이라는 증표이다. 그러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제 더 많이 행복해지는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나와는 결이 다른 길에 대한 고민이었지만, 나의 진심 어린 축하와 지난 경험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감사하게도 내 의도가 후배에게 잘 전해진 것 같다.

"새로운 관점을 전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마음이 편해졌어요. 기쁘게, 감사하며 고민해 볼게요!"

이리도 예쁜 말을 전해주니 내가 더 행복해진다. 그렇게 짧지만 길었던, 충분히 좋은 만남을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후배와의 대화 중에 나온 말이 떠올랐다.

"저는 제 선택은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그 선택이 저랑 잘 맞는 길이었어요."

후배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내가 전한 말은 조금은 달랐다.

"저는 사실 마흔이 다 될 때까지도, 많이 후회하고 원망하며 지냈어요. 그때 그건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시켜서.. 그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식으로요. 그런데 한참을 고민하던 어느 순간 딱 깨닫게 되더라고요. 아! 그마저도 나의 선택이었구나. 나도 모르게 제출된 특차 원서라 할지라고 결국 면접장에 가서 웃으며 최선을 다한 것도 나였고, 합격한 뒤 대학에 등록하러 간 것도 나였으니까요. 그 이후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고요... 상황이 어땠든, 환경이 어떠했든 결국 제가 선택한 거더라고요. 그제야 알았어요. 결국 내 선택이었구나 라는 걸요. 그런 의미로 보면 본인이 잘 선택한 거였던 거예요. 그마저도 본인이 지혜롭게 선택한 거죠. 그리고 그 사이 많은 일을 겪어내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이니까요. 분명 더 지혜롭게 잘 선택할 거예요. 충분히 이 시간을 즐기면서 용기 내 봐요."


실로 그랬다. 마흔이 되고 나서 깨달은 가장 큰 것은 바로 '인정'이었다. 가만히 내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니 그랬다. 수많은 순간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느 길을 걸어 나갔는지는 결국 내가 한 것이었다. 상황과 환경은 모두에게나 있다. 단지 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고, 어느 길로 걸어 나가는지는 그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그 모든 선택이 결국 나였구나! 사실 모두 내가 한 선택이었구나! 이 깨달음은 나에게 가히 혁신적이었다. 그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인정을 하고 나니, 비로소 현재와 미래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의 선택이었음을 깨달으니 모든 후회와 원망이 사라졌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툭툭 털어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나의 과거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 꽤 오랫동안 나는 그 생각에 갇혀 지냈다. 내가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이곳을 이토록 떠나길 원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내 길이 아닌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자꾸만 반복해서 주저앉아 뒤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모든 선택은 나였구나. 그리고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깨달음은 이후 나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더 이상 후회나 불평, 원망이 아닌 희망을 보게 되었고 힘을 낼 수 있었다. 뒤가 아닌 이제 앞을 보고 있다. 힘들게 무언가 고민하고 있다면, 답답한 현실에 괴롭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자. 내가 혹시 외면하는 진실이 있는 건 아닐까? 많은 화살을 모두 타인과 환경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살아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막는 건 사실 주위 사람도, 환경도, 경제적 문제도 아닌 나 자신인 경우가 참으로 많다. 잊지 말자. 매 순간 모든 선택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다. 그 하나를 하니, 그 하나를 해낸 마흔의 내가 제법 멋지게 느껴졌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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