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인정하면 비로소 보인다 2>
“얼굴이 더 젊어진 것 같다?”
“살이 쪄서 그래요. (웃음)”
“살이 쪘어?”
“아니~ 마음이 편안해서 그래. 내가 보니 모든 일에 마음을 편안하게 먹더라고.”
“그래. 그게 최고지.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게 제일이지.”
오랜만에 고향에 찾아가 주말을 보냈다. 나의 20대 초중반의 신앙과 열정, 그리고 첫사랑 오빠와의 추억이 담긴 곳이자, 지금은 부모님과 나의 오빠, 언니네 가족이 다니는 교회다. 교회 식당에서 부모님과 나, 딸 둘이 함께 점심을 먹는데 권사님 한 분이 내게 건네신 이야기에 나의 대답과 엄마와 권사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제는 호르몬 치료제나 약 때문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굳게 자리 잡은 오동통하게 피어오른 나의 살들! 살이 너무 쪘다고 걱정과 구박의 말을 툭툭 던지시는 아빠의 말들에 상처받았던 날들도 지나고, 이제는 나이 들어도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나의 활발한 식성 덕분이라 어쩔 수 없겠구나 받아들이니 마음이 제법 편해졌다. 나는 맛있는 거 먹는 게 참 좋으니 그걸로 충분히 행복하다. 실제로 내 젊음의 비결이 ‘오동통’인 것 같다는 생각도 요즘엔 제법 크다. 심지어 나의 '자기애'에도 살이 쪘는지, 귀여운 돼지 캐릭터를 닮은 마흔의 나도 제법 사랑스럽다. 엄마의 툭 튀어나온 이야기에 밥 먹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보시기에도 그렇게 보이나 보구나. 다행이다. 언젠가부터 막내인 나만 보면 눈물을 흘리시던 엄마가 나의 편안함을 느끼고 계신다니 기분이 좋았다. 안 그래도 많은 걱정을 달고 사시는 희생의 아이콘인 우리 엄마가 적어도 나로 인해 가슴 아프거나 눈물 흘리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마흔이 된 지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만 나이가 공식화되고 나니 병원에 가도 생일 안 지난 나는 아직도 마흔의 초반에 있다. 마흔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인가? 하루하루는 빠르게 지나가는데, 나이는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순간순간 감사할 일이 참 많아진 요즘이다. 그 감사함의 첫 시작은 내게 던진 우연한 질문이었다. 내 생의 첫 마흔을 시작하고 치열한 마흔의 사춘기를 겪어내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이번 고민을 시작한 게 언제였더라?’ 궁금했다. 본격적으로 다시 방황에 몰입하기 시작한 때는 언제였을까? 마치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열심을 다하는 현재, 원하는 미래 모습과 가야만 한다는 미래 모습에서 방황을 반복하며 살던 나였다. 그런 내가 본격적인 의문을 품고 힘을 내어 내 목소리를 키우며, 행동하기 시작했던 그때 말이다.
나의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의 10년은 일적으로는 많은 것을 이루고 인정받았던 시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악몽 같은 기억이 많았던 시간이다. 중간중간 비치는 햇살과 행복을 야금야금 먹으며 버텨냈던 시간이 흘렀다. 후반부에는 나쁜 생각을 할 정도로 삶의 끝자락에 매달린 채 하루하루를 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밖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며,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나의 아이들에게까지 드리워지는 악몽을 보고 난 뒤부터는 그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애썼다. 나의 삶을 놓을 수 없었다. 아이들만 남겨둘 수는 없었다. 내 딸들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었다. 나의 소중한 두 영혼은 적어도 내가 품어 지켜내고 싶었다. 결국 나는 용기를 냈고, 나의 남은 모든 힘을 끓어 모았다. 2017년 늦가을이었던 11월. 마침내 법적으로 나와 두 아이는 자유를 얻었고, 이후 3년 정도 지나자 우리의 삶은 충분히 편안함을 찾게 되었다. 빠져나온 뒤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어둠의 여운이 있었지만 우린 셋이 함께였기에 괜찮았다. 나와 아이들이 정상적인 현실에서 생활하고, 일상 속 사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오롯이 느끼며, 삶의 평안함에 감사하다 보니 모든 것이 좋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여리고 어리숙했지만 세 명이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시간이 지난 후였다.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일들을 정리한 뒤에야, 그리고 자욱하게 덮었던 어두운 안개가 천천히 걷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모습과 내 삶의 방식에 대한 의문을 본격적으로 품기 시작한 것이다.
“아!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왔기에, 더 이상 어둠의 터널에 있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구나! 정말 감사할 일이구나!”
마흔이병을 치열하게 앓고 있는 나의 시간은 앞선 모든 일들이 다 끝난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만큼 편안하다는 증거였고, 이제는 나를 들여다보고 나의 미래를 꿈꾸며 도전할 행복한 시간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나의 현재 모습이나 직업에 고민을 하고,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나는 어둠의 터널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끝없는 터널에서 지쳐 주저앉아 있지도 않다. 어둠의 터널은 나의 뒤에 쓸쓸히 남겨졌고, 이미 저만치 멀어졌다. 나의 마흔이병은 내가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다양한 갈림길이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그래서 이토록 황홀했나 보다. 깨달으니 또 한 뼘 더 편안해졌다.
지금 방황하고 있는가?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가? 걷고 있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괴로운가? 이는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내가 다른 부차적인 문제들이 아닌 나에 대한 문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질문하고, 대답을 찾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위험에 처해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제는 내가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참 좋은 때라는 증거다. 그동안의 오랜 노력 덕분에 내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럴만한 자격은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있다. 우리 모두 그래도 된다. 방황과 의문의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없애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감사하자. 축하하자.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이 순간이 바로 인생의 로또에 당첨된 것이다. 지금 당장 먹고살 게 없는 채로 굶주려 있다면, 당신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통을 뒤질 것이다. 그런데 남들이 말하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남들이 어렵다고 손을 저어 보이는, 그 길을 향해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긴다고? 그만큼 아직 젊다는 의미가 아닐까? 과거의 힘든 시간을 현명하게 이겨냈다는 것이고, 현재 많은 것을 가졌다는 의미이며, 삶의 지혜를 구할 만큼 성장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꿈꾸는 미래 모습을 더 이상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 방황하는 그대여! 우리, 의기소침하지 말자. 우리는 지금 인생 최고의 순간에 살고 있다. 그만 생각하자. 이제는 행동하고, 움직여서, 하나씩 이뤄가야 할 딱 좋은 때이다. 더 이상 기다리지 말자. 지금이 바로 그때다! 우리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대단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졌으며, 무엇이든 해낼 힘과 지혜를 충분히 쌓았다. 가만히 가던 길 간다고 해서 또 다른 터널을 만나지 않는다는 보장 따위 없다는 걸 이제 아는 나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