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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by 정용수

그렇게 점잖던 그의 입에서 험한 욕들이 튀어나오고

숨겨둔 욕망들을 거침없이 쏟아 내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언제나 반듯한 모습으로 살아온 사람 좋은 그가 치매에 걸린 후

한평생 지켜온 그의 품격은 한 번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가난한 6남매 맏이로 태어나 가족들을 책임지며

참고만 살아온 세월 속에 그의 뇌와 심장은

더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제껏 참았던 아픔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아파도 팽개칠 수 없어, 힘들게 붙들고 살아야 했던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은 슬픈 운명을

이제는 아무에게나 내동댕이치는 이기적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평생 저렇게 살았구나

저런 상처 감추며 살았구나

저런 불덩이 같은 마음 억누르며 살았구나

저런 미운 놈 끝까지 품고 살았구나

저런 억울함 때문에 밤잠을 설쳤구나’


초점 잃은 그의 눈을 보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눈물이 났습니다

숨기고 살았던 욕망을 비로소 쏟아 내는

그를 누가 위선자라 욕할 수 있을까요

그가 참아 낸 세월 덕분에 우린 또 얼마나 행복했던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심하게도

늙어서 치매는 절대 걸리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무너진 내 모습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아

혼자만 아프다 죽을 수 있는

착한 병만 허락되길 기도했습니다


아픔을 견디며 살아온 내 착한 이웃들도

치매는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뽀쪽한 기도를 제법 오래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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