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살이 깎이고 베어져도
복수하지 않는 나무가 있기 때문에
제 몸 더럽혀지고 썩어 가도
복수하지 않는 강이 있기 때문에
고운 꽃대 꺾이고 밟혀도
복수하지 않는 들꽃이 있기 때문에
가을 들판은 여전히 넉넉하고
가을 숲은 서럽도록 아름다운지 모른다
자신의 상처보다
자신의 소명을 먼저 생각하는
착한 존재들로 인해
가을 들판엔 오늘도 열매가 가득한지 모른다
끝까지 제자리를 지켜가는
나무 같은 이가 있기 때문에
말없이 생명을 키워가는
강 같은 이가 있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도 주저 없이 뿌리를 내리는
들꽃 같은 이가 있기 때문에
복수가 아닌 용서를 택해
아픔 가운데도 꼿꼿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큰 산 같은 이가 있기 때문에
거친 인생의 들판에도 고마운 열매가 있고
해마다 우린
아름다운 가을을 선물 받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