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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찾아온 겨울

겨울을 바라보다

by 청일



다시 겨울이 찾아온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에 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순백은 언제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며칠 전 문래동에서 작은 화분에서 피어오른 연둣빛 새싹을 바라보며 봄이 다가왔음을 목격했건만 오늘 이렇듯 한겨울의 눈처럼 내린 경치를 보고 있자니 그날 보았던 일찍 깨어난 새순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3월이 되며 날씨가 풀려 언제 겨울이었어?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2월에 내렸던 잔설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 정말 봄인가 했다. 오늘 다시 하얀 눈을 보니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잠시라도 붙잡은 듯 반갑기도 하다. 봄은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잠시 물러섰다. 세상에 영원이란 단어처럼 허황된 말이 있을까?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으면서 어찌 영원이란 단어가 생겨났는지 모를 일이다. 계절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문명도 그러하다.


인간의 삶은 늘 계절과 날씨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날씨와 계절에 맞춰 삶의 모습도 변한다. 매년 똑같은 계절이 반복되니 지금의 계절 다음을 이미 알고 있어 혹한과 혹서를 이겨내고 살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행복과 기쁨도 슬픔과 아픔도 지속되지 않음을 우리는 자연에서 배운다. 실로 자연이 인생에 주는 교훈은 참으로 거룩하다. 추상같은 명령이고 순리이다.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늘 자연 앞에 서면 경건해지고 경외로움 마저 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차등 없이 주어지는 자연의 이치 앞에 우리는 평등의 문제마저 끌어들여 이 불평등의 세상을 위로하고 위안 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계절의 거대한 흐름에 잠시 반란하는 모습이 반가움으로 다가선다. 마지막 눈일 것이다. 더는 봄도 양보하지 않을 터이니 맘껏 봄 속에 잠시 찾아온 겨울을 만끽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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