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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우리들

제이디차

by 청일


1. 작가소개


제이디차(JD Chai)는

‘한 사람의 생이 얼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남기는가’를 집요할 만큼 깊게 바라보는 화가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되,

그 위에 자연과 신화적 상징을 겹쳐

삶이 가진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끌어올린다.


그의 인물들은 현실을 닮았으면서도,

어딘가 이 세상과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듯하다.

동물의 형상을 얹거나, 자연의 빛을 스며들게 하며,

‘한 존재의 본래 모습’을 조용히 건져 올린다.


그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견뎌낸 시간의 무게를

지극히 잔잔한 아름다움으로 새긴다.


2. 작품설명


그림 속 노인은

세월이 깊게 흐른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채

고요한 바람 속에 서 있다.


그의 머리 뒤로는 짐승의 귀 같은 형상이 떠오르는데,

이는 인간의 연약한 육체와

자연의 본능적인 힘이 공존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바람의 흐름을 따라

새로운 시간으로 흘러가고,

멀리 나는 한 마리 새는

언제든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자유를 그려낸다.


주름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살아온 날들을 꾹꾹 눌러 새긴 문장처럼,

견뎌낸 세월이 남기고 간 숭고함이다.


이 작품은 노년을 ‘쇠퇴’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한 생이 스스로를 완성해 가는

늦은 오후의 찬란함을 담아낸다.


3. 나의 감상


북서울미술관에서 이 작품 앞에 섰을 때,

나는 이상할 만큼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그림을 외면하고 싶다는 마음이

슬그머니 가슴 안쪽에서 올라왔다.


그 노파의 얼굴은

내가 언젠가 마주할 미래를

너무나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누구도 나이 드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긍정하려 애써도,

세월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그 흐름 앞에서 나는 문득 작아진다.


길에서 마주치는 노인들을 마주하면

그들 역시 청춘의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 젊음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나 또한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언젠가 돌봄이 필요할 때가 오고,

힘이 빠져 의지할 것들이 하나둘 생겨날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 사실은 때로 두렵고, 때로 아득하다.


하지만 나이 들며 비로소 얻게 되는 것들도 있다.

젊은 날엔 미처 보지 못한 것

벚꽃이 지는 속도, 바람이 지나가는 결,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미세한 떨림 같은 것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너그러워졌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긴긴 세월을 살아오며 겪은 사건과 사고들이

결국 한 조각 풍경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이 나이가 준 선물이다.


그림 속 노파의 주름은

무너짐이 아니라 버텨낸 시간의 신성함이다.

그 주름 안에 담긴 햇빛, 바람, 상처, 사랑이

한 생의 무게를 아름답게 채우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 순간을 위한 오늘의 삶을

아낌없이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며 해야 할 일이다.


그 순간을 위해

오늘의 시간을 허투루 흘리지 않기를.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

곧 나의 내일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기에.


이토록 유한한 삶이지만,

그 유한함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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