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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레니아 해 옆 서재

일리야 밀스타인

by 청일


1. 작가 소개


일리야 밀스타인(Ilya Milstein)은 멜버른에서 태어나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섬세한 펜 선과 클래식한 분위기의 색감을 활용해, 일상의 한 장면을 고전 회화처럼 재구성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그림은 마치 시간이 고요히 멈춘 프레임처럼 보이며, 보는 이를 자연스럽게 장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뉴요커』, 『뉴욕타임스』 등 여러 매체와 협업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왔으며,

도시와 자연, 인간의 내밀한 순간을 따뜻한 감성으로 그려내는 것이 그의 작품 세계의 특징이다.


2. 작품 설명


티레니아 해 옆 서재는

푸르른 지중해의 수평선과 한 사람의 고요한 일상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작품이다.


이방인의 어깨너머로 바다의 푸른빛이 조용히 스며들고, 창문 밖에서는 티레니아 해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실내는 따뜻한 색감의 나무 가구들로 정돈되어 있고,

탁자 위에는 그가 방금 읽고 내려놓은 듯한 책들이 놓여 있다.


이 장면은 화려하지 않지만,

사유(思惟)의 시간과 풍경의 시간이 절묘하게 맞닿아 있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바다는 말없이 흐르고,

책장은 묵묵히 쌓여 있는 지식의 깊이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은

자연과 지성, 바깥 세계와 내면세계를 잇는 매개처럼 보인다.


이 작품의 핵심은 “조용한 일상의 숭고함”이다.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한 사람의 고요한 뒷모습과 그가 머무는 공간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3. 나의 감상


삶은 늘 떠나보내는 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워간다. 어쩌면 그래서 오늘의 사람들을 더 따뜻하게 대하려 애쓰는지도 모른다.

아들은 일찍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갔고, 얼마 전에는 딸도 조용히 둥지를 떠났다. 탄생의 순간부터 성장을 지켜본 시간들은 내 삶의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었지만, 뿌리는 결국 더 넓은 토양을 향해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고요한 공기와 허전함. 비워진 방을 마주한 첫날, 그 적막은 생각보다 더 깊었다. 그러나 나는 그 빈자리를 오래 두지 않았다. 마음을 다독이듯 천천히 채워 넣었다. 딸의 옷이 빠져나간 자리에 나의 책들이 들어섰고, 작은 책상과 책장이 놓였다. 거실에서 늘 음악을 틀어주던 오디오도 새 거처를 찾았다.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나만의 조용한 서재가 완성되었다. 딸이 떠나며 남기고 간, 시간의 선물 같은 공간이었다.


그림 속 책으로 가득 채워진 방을 들여다본다.

책장 사이에 앉아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는 한 사람.

지식의 축적 속에서 멈춰 있는 듯하지만, 누구보다 멀리 여행하는 사람.


이 그림처럼 나 또한 책장 사이에 앉아 있다.

오십이 넘어 찾아온 책들은 나를 다시 길 위에 세웠고, 글쓰기는 내 존재의 가장 깊은 문을 열어주었다. 책은 다른 이들의 삶을 빌려 내 시선을 넓혀주었고, 글쓰기는 나를 비추어 세상을 더 깊게 바라보게 했다. 계절의 결이 가까워졌고, 일상이 문장이 되었으며, 성찰이 삶의 방향을 조용히 이끌었다.


그림 속 창문 너머로 펼쳐진 고요한 바다는, 어쩌면 나의 마음이 향하고 싶은 또 다른 풍경일지도 모른다.

책은 방을 채우지만, 생각은 세상을 열어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책장을 바라볼 때마다 내 삶의 풍경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책장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읽는 자리’, ‘생각하는 자리’, ‘머무는 자리’가 나를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이 더 소중하다.

한 권 두 권 쌓여가는 책들은 곧 내 삶의 기록이 될 것이고, 조용히 적어 내려 가는 문장들은 내 생을 증명하는 가장 순도 높은 자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과 그림, 글쓰기로 하루를 연다.

그림 속 인물이 바라보던 바다처럼,

내 안에도 끝없이 넓어지는 사유의 풍경이 잔잔히 펼쳐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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