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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스빈 Sep 04. 2024

홍릉과 유릉을 거닐다

비운의 마지막 왕



남양주 금곡에는 홍릉과 유릉이 있다.

서울 근처 경기도권에는 조선 왕실의 릉들이 많아서 누구의 보인지고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들이 많다.  집 근처에도 태릉 강릉이 자리하고 있지만 누구의 묘인지 기억나진 않는다.

한때는 태릉엔 놀이시설 크레이 사격장까지 있었다. 아들이 어릴 땐 그곳에서 어린이 자동차도 태워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지나면서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런 시설들은 모두 사라지고 왕릉만 남게 되었다. 숲처럼 우거진 소나무숲 사이를 걸어가면 나오는 왕릉들은 그 웅장한 자태만으로도 조선왕실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아내가 금곡 쪽에 교육이 있어서 데려다주는 김에 난 홍릉과 유릉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아내가 극구 간이 의자를 가지고 가라 하여 무거운 의자를 어깨에 걸치고 관람소에서 티켓팅을 하려는데 의자는 반입불가라고 한다. 무겁게 들고 왔건만 ㅠㅠ 할 수 없이 매표소에 의자를 맡겨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능내를 거닐었다. 가을로 접어들긴 했지만 한낮의 햇볕은 아직 따가웠다.

먼저 마주하게 되는 홍릉은 바로 대한제국 1대 황제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이고 조선말기 일제에 위해 주권을 침탈당하고 왕권이 사라진 고종은 개혁에 대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실행에 옮길 수 없는 비참한 현실에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황후를  일본 자객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비운은 또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온다.

홍릉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 올라가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저미어지는 덕혜옹주의 릉이 나온다. 가는 길에는 길옆으로 조선 1대 왕부터 순종까지의 묘의 사진과 스토리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걸어가는 길이 조선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듯하다.

묘역으로가는 길에 전시된 덕혜옹주 사진들

덕혜옹주의 묘 근처길에는 덕혜옹주의 일생이 담긴 사진과 글들이 열거되어 있었다. 예전 덕혜옹주라는 영화를 보며 그녀의 불행한 삶을 간접경험한 터라 애잔한 맘이 더해진다.

일본에 의해 강제 도일을 하고 그곳에서 총독부가 맺어준 일본인과 결혼을 하고 딸까지 낳았지만 순종의 죽음과 어머니인 귀인 양 씨의 죽음으로 외로운 일본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일본인 남편은 그런 그녀를 버리고 강제 이혼 후 또 다른 결혼을 해버린다. 딸은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행방불명돼버렸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일본땅에 홀로 남겨진 덕혜옹주는 정신병이 더 악화되고 당시 박정희 정권의 도움으로 51세의 나이로 38년 만에 고국땅을 밟지만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고국에 돌아온 것도 몰랐다고 하니 그녀의 일생이 왜 이리도 서러운지 모르겠다.

덕혜옹주의 묘

한나라의 옹주로 고종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일제에 의해 기구한 운명으로 생을 마감한 그녀의 일생을 읽어보며 나라 잃은 망국의 설움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은 흘러 사람은 간데없고 릉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한 인간의 비극적 삶이 고스란히 릉안애 담겨 있는 듯하다.


지금에야 코리아의 기상이 세계에 명성을 떨치지만 유럽의 문명에 비하면 비천하기 그지없었던 조선시대 평민의 삶을 생각하면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부국임에 분명하지만 아직 문화적 소양만큼은 가야 할 길이 아직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릉들을 보며 한 서린 대한제국의 못다 한 꿈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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